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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왜 신문 사설 챙기냐고? … 세상을 정리해주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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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례없는 가뭄으로 산천이 바싹바싹 타 들어가던 지난 주말, 김용택 시인은 어김없이 고향 진메마을을 찾았다. “예전엔 참나무 하얗게 뒤집어지면 사흘 뒤에 비가 왔었는데….” 고무호스로 잔디에 물을 좀 주려고 들렀는데 신기하게도 몇 시간 뒤 비가 내렸다. [박종근 기자]

그의 시는 언제나 한 폭의 그림입니다. 눈앞에만 펼쳐지는 게 아니라 새소리, 개구리 소리 들리고 과일향기, 꽃내음이 감돕니다. 그러고는 가슴 한 켠이 저릿하고 뭔지 모를 감동이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합니다. 그의 시에 자연이 있고, 우리 어머니·아버지의 삶이 너무나 진솔하게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친구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덤덤한 일기처럼 흘러가는 시를 읽다 보면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고향과 못다 한 효도가 떠오릅니다. 평론가들은 시인 김용택(64)을 “자연을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받아 쓰고, 자연의 소리를 옮겨 적으니 그대로 시가 됐다”며 웃고 말지요. 1985년 발표한 시집 『섬진강』에 실린 스무 편의 ‘섬진강’ 연작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별명도 ‘섬진강 시인’입니다.

 여전히 고향집과 어머니 곁에서 글을 쓰는 김용택 시인의 아름다운 주말, 아름다운 고향을 만나 봅니다.

가르치는 시인 :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게 된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김용택 시인.

 지금 사는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고향인 진메마을(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암리)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라 주말마다 자주 들른다.

 주말에도 저녁 8시면 자고 새벽 4시면 일어난다.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해서 그런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농부들이랑 똑같다. 일어나서 1시간 조금 넘게 책을 본다. 그리고 오전 5시반쯤 집을 나서 전주 시내를 가볍게 산책한다. 시내에 화산(華山)이란 나지막하고 예쁜 산이 하나 있다. 오르락내리락 흙길이 험하지도 않고 왕복 1시간20분이면 충분하다. 집에 돌아오면 신문을 ‘공부’한다. 주로 칼럼이나 사설·시론과 인터뷰 기사들을 꼼꼼히 챙긴다. 시인이 웬 신문 사설이냐고? 모르는 말이다. 그게 바로 우리들 세상을 정리해주는 글이다. 좋은 칼럼은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그런 글을 찾기가 점점 어렵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평생을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2008년에 정년퇴직을 했지만 올해부터 다시 매주 둘째·넷째주 토요일이면 학교에 가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다. 우리나라는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 그런데도 애들이 진짜로 아는 건 별로 없다. 저기 짜개나무(자귀나무의 전라도 사투리)가 하나 있다. 그 나무를 열심히 보다 보면 그 옆에 있는 나무도 보게 된다. 나무가 산에 있으니까 산도 보게 된다. 비가 안 오면 짜개나무는 말라 죽는다. 그러면 비도 알게 되고, 나무 옆에 꽃이 피는 것도 알게 되고, 나무 위에 새가 날아드는 것도 알게 된다. 이게 바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하나를 알아서 하나만 쓰면 100점을 맞는다. 하나를 알아서 하나만 쓰는 교육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외통수 교육으로 사고를 가로막아 버리니 애들이 저렇게 극단적이 되고 겁나는 일을 함부로 해 버리는 거다. 아이들 탓할 게 하나도 없다.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는 거다. 가끔 집에 위스키 술병들을 훈장처럼 좍 진열해 놓은 걸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애들이 뭘 보고 자라겠나. 술 보고 자라지. 난 아이들을 그냥 놀렸으면 좋겠다. 집 거실에 있는 화분, 아파트 놀이터 옆에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는 ‘습관’이 생기게 말이다. 아이들이 빗물 고인 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아나? 물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 때와 안 불 때, 해가 밝을 때와 어두울 때, 아침과 밤낮이 전혀 다르다. 자연은 늘 안정돼 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거다.

영화 보는 시인 : 나는 잠수함의 토끼다

 내 삶은 번잡한 삶이 아니다. 친구도 많이 없다. 안도현 시인, 도종환 시인하고 친하긴 하다. 그래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 제일 편하다. 뭐 하고 노느냐고? 욕하고 논다, 하하. 만나자마자 욕으로 시작해서 고스톱도 치고…. 시골 할머니들하고도 놀고. 진메마을 고향집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27살 때 내가 심은 나무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고향집은 지어진 지 60년도 넘었다. 내내 비가 안 와서 마당의 풀이나 나무들이 말라 걱정했는데 최근에 비가 좀 와서 다행이다. 어머니(박덕성·85)는 나이가 드셔서 전주시내 병원과 시골집을 오가실 때가 많다. 병원이나 전주 집에 있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오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나는 시골집이든 어디든 아내와 함께 간다. 주중엔 강연이 많은데 늘 아내와 같이 다닌다. 아들·딸과 같이 간 적도 많다. 나는 "집에서 가족과 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놀거리도 없고 서로 싸우기도 할 거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같이 노는 방법을 찾게 된다. 같이 TV를 보든가, 가까운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든가, 미술관이나 서점에 가든가. 차 타고 멀리 나가면 애들은 차에서 잠만 자고 어디 갔다 왔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서로 부대끼며 집 안에서 노는 게 정서적으로 가까워진다. 사람은 그렇게 자라고 살아야 한다. 주말엔 가족끼리 콩나물국밥이나 피순댓국을 즐겨 먹는다. 전주에 산다고 비빔밥만 먹는 줄 아는데 오히려 잘 안 먹는다(웃음).

 밥을 먹고 나면 한옥마을을 걷거나 차를 마시러 한옥 카페에도 간다. 저녁이면 또 가족끼리 TV 앞에 앉는다. 요즘은 드라마 ‘추적자’와 ‘넝쿨당(넝쿨째 굴러온 당신)’ ‘개콘(개그 콘서트)’을 즐겨본다. 내가 워낙 일찍 자버리니까 생방송으론 못보고 가족들 모두 인터넷TV로 ‘다시보기’를 한다. 이게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영화도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 시대를 놓치지 않는다. 시인은 ‘잠수함의 토끼’ 같은 사람들이다. 옛날엔 잠수함 속에 토끼를 싣고 다녔다. 실내 공기가 부족하거나 오염되면 가장 먼저 토끼가 알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렇게 현실 속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시대정신’이라는 게 정착돼 있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 거침없이 달려오다 보니 삶의 가치를 찾아볼 시기를 놓쳐버렸다. 무조건 돈 많이 벌고 출세해서 잘사는 게 목적이 돼 버렸다. 나는 우리가 삶의 가치를 되찾으려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놀기 좋아하는 시인 : 놀면 착해진다

 언제부턴가 가정이 ‘조직’이 돼버렸다. 각자 자기 역할만 잘하면 되는 거다. 아빠는 돈 벌고, 아이는 공부하고. 특히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만 했지 노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적어도 주말엔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놀 줄 모르면 살 줄도 모른다. 논다는 건 ‘상대’가 있는 것이고, 공부는 그저 ‘대상’일 뿐이다. 상대가 있다는 건 나를 상대에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부는 안 해도 되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밤늦도록 사무실에 불 켜고 일하는 거, 하나도 자랑할 일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마음이 삭막해졌다. 참다운 복지가 뭔지도 모른다. 돈이 복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는 게 힘든 거다. 일을 확 줄이면 사람들 마음도 선해질 것 같다.

언젠가 자식들한테 “너희도 힘들 때가 많았을 텐데 엇나가지 않고 잘 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 아빠가 너무 행복하게 사니까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버텼다”고 하더라.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게 교육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행복의 맛’을 보여줘야 한다.

 요즘은 주말이면 고향집 서재방인 ‘관란헌(觀瀾軒)’에 앉아 밀린 글도 쓰고 책도 본다. 작품을 주기적으로 정해 놓고 쓰진 않지만 내년 봄에 시집이 하나 나온다. 1985년 ‘섬진강’ 연작을 발표했는데 그로부터 30년 뒤의 섬진강을 그린 시다. 시가 너무 슬프다. 어머니의 강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처절하게 고통당하고 있는지를 적었다.

 사람들은 시가 어렵다고 한다. 그건 학교에서 단어마다 줄을 긋고 다 해체하며 어렵게 가르쳐서 그렇다. 시는 느낌으로 이해하면 된다. 시는 문과와 이과를 융합한 거다. 소위 ‘물리’가 터진 게 시다. 시를 이해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빨리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학생이든, 예술가든, 기업하는 사람이든, 정치하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중요하다. 공감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감동의 시대, 그것도 ‘예술적 감동’의 시대다. 나는 내 시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으면 좋겠다. 어떤 게 풍요로운 삶이냐고? 20·30대의 성공한 삶보다 60·70대에 성공한 삶, 그게 풍요로운 삶이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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