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자동차·유통업 '가격 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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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에 내수시장을 지키려는 기업들의 가격 대전(大戰)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경기침체에 놀라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을 가격으로 붙잡으려다 보니 기업마다 비용을 한푼이라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격경쟁이 비용대전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쟁은 특히 내수시장을 주도하는 정유.자동차.유통업종 등에서 가열되고 있다. 업종에 따라서는 일시적인 손실을 감수하는 판매가격 동결이나 인하전략도 불사하고 있다.

◇ 치열한 비용 줄이기 경쟁〓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는 지난해 말 사장단 모임을 갖고 고객사은행사를 자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백화점 3사는 이를 통해 지난해 1천억원에 가까웠던 판촉비를 올해는 30% 이상 줄일 계획이다.

인건비도 주요 절감대상이다. 신세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장의 현금수납 직원들을 아웃소싱(외부위탁)함으로써 연간 20억원의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롯데는 올들어 수시휴가제.토요 격주휴무제를 도입, 연간 35억원을 줄여나갈 계획.

원화가치가 떨어진 데다 국제 유가까지 올랐는데도 두달째 석유값을 올리지 않은 정유업계는 비용 경감에서 무한경쟁의 버팀목을 찾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구매선 다변화를 통해 1센트라도 싼 원유를 들여오고 인터넷 구매를 통해 각종 자재구입비용을 낮추며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격동결을 주도하며 기름값 전쟁에 불을 붙인 S-Oil은 원유보다 배럴당 4~5달러 정도 싼 벙커C유를 재정제해 고품질 제품을 뽑아내는 석유정제 고도화 시설을 최대한 활용, 원가부담을 줄이고 있다. 연간 4백억~5백억원이 드는 보너스 카드 운영비용과 주유소 사은행사를 최대한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SK㈜는 지난 2월 개통한 기계.실험시약.공사용역.사무집기 등 일반자재구매 시스템(SK-ebid.com)을 통해 올해 1천억원 가량을 구매할 계획이다. 이는 회사 전체 구매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회사 박용국 상무는 "온라인을 통한 공개입찰로 구매비용이 10~15% 가량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말했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실시하는 10개월 무이자 할부에는 저금리로 인한 금융비용부담 경감이 가장 큰 힘이 됐다" 고 말했다.

◇ 덩어리 비용절감이 관건〓가격경쟁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면 '쥐어짜기' 식의 원가절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기업의 고민이다. 결국 이익이 안나는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거나 공급자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규모가 큰 덩어리 비용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휘발유값을 올리지 못하면서 정유사 전체로 하루 50억원 가량의 손실을 보고 있다" 며 "기존의 비용 절감방식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고 말했다.

이에따라 LG정유는 최근 자재 납품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납품업체들이 납품시기나 재고를 적절히 관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원가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또 여러 조직에 흩어져 있던 구매계약 업무와 영업조직에 분산된 고객서비스 센터를 통합, 비용을 절감했다.

백화점 업계도 협력업체와 재고검색.주문발주 등이 실시간에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 재고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롯데.신세계 등은 지난해 대규모 거래선과 개통한 이 시스템을 올해는 더욱 확대해서 재고비용 절감을 꾀하고 있다.

이용택.이영렬.김태진 기자 ly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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