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설 여성부 감투? 제가 왜 기웃거려요?"

중앙일보

입력

컨텐츠코리아의 이영아 사장은 아직 30대이지만 인터넷 업계에선 알아주는 마당발이다. 여기에다 ‘인터넷 전도사’를 자처할 정도로 각종 단체와 기관·대학 등에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정보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맑은 눈웃음이 매력인 컨텐츠코리아의 이영아 사장(36). 그에게선 전혀 걱정을 읽을 수 없다. 인터뷰 또한 도란도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말한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에게 처럼.지난 1일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시간에 중소기업 대표 자격으로 참여해 “각 부처의 이해관계로 중복정책 남발 및 정책입안 지연 등으로 오히려 중소기업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는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을 할 때와 딴판이다.
기자가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말을 하자 인문학의 기본은 역사·철학이라며 역사를 배운 사람은 인간생활에서 베이직(근본)이 된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사실, 李사장이야 말로 베이직이 된 벤처기업가다. 그의 얘기를 듣노라면 ‘처음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성공한 여성 기업가로 21세기 여성정보화포럼 대표, 이화 IT 총무이사, 중소기업 신지식인상 수상, 여성특별위원회 우수여성 벤처기업인 수상 등 벤처업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출발은 미미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결혼했어요. 군인인 남편을 따라 지방에서 살았는데 6개월이 지나자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배운 것마저 기하급수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베이직 프로그램을 배우면서 PC통신을 시작했지요.”

이영아 사장 약력

  • 1965년 5월生
  • 1988년 이화여대 사범대학 졸업
  • 1993년 이화여대 대학원 졸업
  • 1994년 5월 ∼1995년 12월 신호그룹 새피앙미디아트 기획실장
  • 1996년 1월 ∼1996년 12월 통신나라 미래교육 정보기획 실장
  • 1997년 1월 컨텐츠코리아 대표이사(現)
  • 1999년 한양대 대학원 교육공학과 박사과정(現)
  • 1999년 21세기 여성정보화포럼 대표(現)
  • 2000년 중소기업협동중앙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現)
  • 2000년 이화IT 총무이사(現)
  • 2000년 ‘우수여성벤처기업인’ 수상
  • 2000년 ‘중소기업 신지식인’선정

  • 남편을 졸라 대학원에 등록한 李사장은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며 컴퓨터 활용법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신호그룹의 계열사 새피앙미디아트의 기획실장과 통신나라 미래교육에서 정보기획실장으로 재직하며 멀티미디어에 대한 지식을 축적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97년 1월, 자신의 안방을 사무실로 개조해 디지털 콘텐츠 기획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른바 1인 소호사업자이자 프리랜서로 벤처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제일기획과 공동으로 삼성자동차 박물관 홍보용 콘텐츠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CD롬 제작 기획 등 사업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IMF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밀리면서 프리랜서 6명과 함께 일하게 된 李사장은 규모의 확대를 절감한다.

    98년 3월, 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지원센터 창업보육센터에 입주를 신청했다. 남편과 함께 1개월 동안 꼼꼼히 제안서를 쓴 결과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창업센터에 입주했다. 홈오피스에서 스몰오피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 하지만 집을 담보로 거금 4천만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농협 유통 홍보용 타이틀과 육군종합행정학교 문서관리 군 WBT 기획납품, 교육부 에듀넷 사이버 평생교육원 문화 콘텐츠 등을 수주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다. 이에 힘입어 2년 과정의 창업보육센터에서 1년 반만에 조기 졸업한다. 더욱이 이때 인터넷 서비스업체에 근무하던 남편마저 사업본부장으로 합류해 관리 및 국내영업을 맡으면서 사업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겨웠던 관리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99년 10월에는 개인사업자 ‘인포머셜 컨설팅’에서 자본금 1억원의 주식회사 ‘컨텐츠코리아’라는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하지만 사업을 접어야 하는 남모르는 고통의 순간도 겪었다고 李사장은 토로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는 풍토에 실망했어요. 게다가 IMF 영향을 받아 3일간 임금이 지연되는 사태를 맞을 때는 사업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내가 9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판단이 서자 마음을 바꿨지요.”

    그의 얘기를 듣고 다소 속물 근성을 발휘한 기자는 “3개월도 아니고 3일인데 뭘 그걸 갖고 그러느냐”고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李사장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자신을 믿고 함께 하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잃는 것만큼 마음 아픈 일은 없다고 했다. 천상 타고난 마음씨 여린 李사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컨텐츠코리아는 콘텐츠 분야에서 그 동안 이룬 성과에 비해 업계에서 부각되지는 못했다. 이 회사가 업계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98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정보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워터마킹 시스템’ 개발로 정보통신부 우수 신기술 지정업체로 선정되면서부터다.

    99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제방지 시스템 개발에 나서 1년 6개월간의 노력 끝에 디지털 저작권 분쟁 발생시 콘텐츠에 있는 정보를 추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컨텐츠 가디안’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이어서 콘텐츠가 복제된 후 저작권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보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인 ‘넷가디안’마저 개발해 콘텐츠 무단 도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벤처업계로부터 주목받는 업체로 등장했다.

    지난 2월에는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보호기술인 ‘워터마킹 솔루션’의 세계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동 기술개발과 해외마케팅에 나서기 위해 컨텐츠코리아와 마크애니, 실트로닉 등 6개사와 전략적 제휴도 체결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발달된 콘텐츠 저작권 보호기술을 활용, 국내업체들이 세계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 동종 업체들이 협력하자는 李사장의 제안에 5개업체가 동의한 것이다.

    여성 정보화 사업에 앞장

    전업주부에서 소호사업자를 거친 李사장이 디지털 콘텐츠 기획 및 저작권 보호기술 분야에서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휴식이란 개념은 찾을 수 없다. 하루가 25시간이라고 해도 모자랄 지경인 그는 그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한양대 교육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李사장은 아직 36살이지만 인터넷 업계에선 알아주는 마당발로 소문나 있다. 그리고 ‘인터넷 전도사’를 자처할 정도로 각종 단체와 기관·대학 등에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정보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정보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99년에는 ‘21세기 여성정보화 포럼’을 창설해 여성정보화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해는 모교인 이화여대 출신 벤처기업가 및 IT업계 종사자들의 모임인 ‘이화 IT’를 창립시켜 총무이사, 중소기업중앙회 여성특별위원회 이사 및 벤처기업특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서 혹시 신설된 여성부에서 李사장에게 한 자리를 제의한다면 수락하겠냐는 질문을 했다.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李사장은 “지금까지 회사운영과 여성 정보화 확대 등 두 줄기에서 대외적인 활동을 해왔기에 전혀 고려 하고 있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떤 가치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여성 경영인으로 알려진 李사장의 경영철학은 인본(人本)이다. 직원과 얘기할 때 항상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는 李사장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의 사무실은 언제나 열려있다. 벤처기업은 CEO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벤처 마인드로 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李사장과 남편인 하재구(41) 컨텐츠코리아 사업본부장은 업계에 소문난 잉꼬 부부 벤처기업가다.

    남편이 李사장의 회사에 합류한 것은 98년. 8년여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정보통신업계에 근무하던 남편이 李사장의 사업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하나로 뭉친 것이다. 현재 경영은 李사장이, 남편인 하 본부장은 국내 영업 및 컨설팅 업무를 맡는 등 역할 분담을 통해 아름다운 내외조를 하고 있다.

    李사장은 97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4년여 기간 중 처음 뜻을 같이 창업 동지인 직원과 창업 보육센터에 입주코자 남편과 함께 밤을 새워 입주 제안서를 쓰던 일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낙천적인 성격에다 끈기 있는 프로 근성으로 오늘의 컨텐츠 코리아를 일궈낸 李사장의 활짝 웃는 모습에서 준비된 디지털 리더로서의 모습이 엿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