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리치의 감각으로 도배하다 - '스내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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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스내치'를 보고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형편없다고 불평하거나 영화 내내 웃느라 힘들었다고 하거나. '스내치'는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라는 이상하면서 함축적인 제목의 영화로 영화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다. 아마도 이 감독을 작품보다는 가수 마돈나의 남편으로서 기억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해외 평자 중에선 “전작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마치 노래를 재창하듯 다시 한 번 편곡한 듯한 영화”라는 식으로
기발한 신작 '스내치'를 비꼰 이도 있지만 가이 리치 감독을 스타일리스트적인 기질과 무궁무진한 유희감각의 소유자로 평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스내치'는 줄거리가 조금 복잡하다. 권투 프로모터 터키쉬와 토미는 사기도박으로 건수를 올리기 위해 마피아 두목 브릭 탑과 거래하려 한다. 그러나 예정되어있던 선수에게 차질이 생기고, 전전긍긍하던 터키쉬 일행은 우연히 아일랜드계 집시 미키를 알게된다. 그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터키쉬와 토미는 그를 시합에 출전시킨다. 하지만 집시 미키는 처음 약속을 깨고 상대를 한주먹에 링 위에 다운시킨다.

영화는 다른 인물도 보여준다. 브릭 탑과 아비는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데 이 와중에 터키쉬 등이 휘말린다.
전문적인 킬러까지 이 싸움에 끼어들면서 점차 상황은 꼬여만가고, 미키의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마도 '스내치'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브래드 피트의 모습일 것이다.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르고 돌처럼 단단하면서 강력한 주먹을 휘두르며 무엇보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영화에서 빛나보인다. 이른바 '섹시 가이'로서의 이미지를 완전히 버린 브래드 피트는 자신의 연기 중에서 가장 유머스럽고 코믹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가이 리치 감독은 원래는 귀공자 스타일이었던 이 남자배우를 미키라는 아일랜드계 집시로 분장시켰는데 브래드 피트의 뒤틀리고 분열된 스타로서의 이미지는 전작 '파이트 클럽' 시절과 일정 정도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그는 한참 열심히 대사를 중얼거리는데 상대편 반응이 더 우습다.

“쟤, 뭐라는 거야?” 그만큼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구사한다. '스내치'는 사실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쌍둥이격인 영화다. 작은 사건들이 얽히면서 인물들이 연관되고 폭력에 대한 유희정신이 배어있다는 점에서 영락없이 닮은 꼴이다. 권투로 돈을 버는 사기도박단과 좀도둑, 갱 두목과 전문적인 킬러들이 하나씩 얽히면서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필연적으로 한 지점에서 마주치는 구성은 영화를 보노라면 무릎을 탁 치도록 만드는 참신함이 있다.

폭력의 세계에 갇힌 인물들에게서 비정함의 논리를 과시하기보다는 한번쯤 비틀린듯한 웃음을 길러올린다는 점에선 타란티노 감독을 연상케하는 점도 있지만 가이 리치 감독은 신작 '스내치'에선 좀더 스타일에 골몰하는 양상을 보인다. 빠른 편집과 잦은 정지화면, 그리고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훌쩍 건너뛰는 장면에선 화면 분할 등의 테크닉을 이용해 감독은 '스내치'를 왁자지껄한 희비극으로 창조해낸다.

이러한 스타일에 대한 집착은 사실 가이 리치 감독이 즉흥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것 같은데 촬영현장에서 영화 속 대사와 상황을 그때그때 만들어낸다는 이 감독은 영화를 순수한 재미 위주의, 정신없는 즉흥극으로서 사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내치'는 영국식 유머를 기본으로 깔면서 갱스터 영화와 코미디, 그리고 액션영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영화다.

전작과 비교하자면 별다르게 발전한 구석이라곤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이렇듯 투철하게 영화에서 완전무결한 '재미'를 창조해내는 재능을 지닌 감독을 만나기란 역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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