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2] 악동이 순해졌다, 이탈리아 강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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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발로텔리가 이탈리아를 유로 2012 결승으로 이끌었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두 골을 몰아친 발로텔리는 결승행이 확정된 후에도 웃지 않았다. 발로텔리가 전반 20분 선제골을 넣은 뒤 유니폼 상의를 들어올리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 로이터=뉴시스]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의 고민은 ‘악동’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22·맨체스터 시티)다. 화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 성격이라 다루기 어렵다. 툭하면 동료와 싸워 팀 분위기를 해친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를 앞두고 “내게 바나나를 던지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리고 감옥에 가겠다”는 말까지 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피해의식이 있다.

 하지만 잘만 어르고 달래면 무시무시한 창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탈리아 대표팀은 보여줬다. 이탈리아가 발로텔리를 품고 유로 2012 결승에 진출했다. 발로텔리는 29일(한국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유로 2012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두 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동료 모두가 하나가 돼 발로텔리를 응원한 결과다.

 안토니오 카사노(30)는 경기 전부터 발로텔리 옆에 꼭 붙어 이야기를 나눴다. 머리를 툭툭 치며 긴장을 풀어줬다. 벤치에 있던 동료는 선발 출전하는 발로텔리의 손을 잡으며 한마디씩 건넸다. 체사레 프란델리(55) 감독도 경기 시작 직전까지 발로텔리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며 독려했다.

 발로텔리는 전반 20분과 36분 머리와 오른발로 골을 넣어 이탈리아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결승골을 넣고서는 유니폼 상의를 벗어 근육을 자랑하는 ‘헐크 세리머니’로 상대 기를 죽였다. 동료들은 발로텔리가 골을 넣을 때마다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마치 어린 아기를 다루는 듯했다. 후반 23분 다리에 쥐가 나 교체되자 벤치에 있던 모든 선수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동료들이 발로텔리를 극진히 아끼는 이유는 거친 성격만 잘 다루면 이탈리아 최고 공격수가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서도 발로텔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다니엘레 데로시(29)는 “발로텔리는 문제아가 아니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 때 내가 화를 낸 적이 있다. 발로텔리는 듣고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프란델리 감독도 “그는 열정이 많을 뿐이다. 모든 선수와 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조만간 세계 최고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발로텔리는 경기가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몸을 기댔다. 그라운드에 뒤엉켜 기뻐하는 동료를 바라만 보며 홀로 생각에 잠겼다.

 후보 골키퍼 모르간 데산크티스가 억지로 발로텔리의 손을 잡아 그라운드로 끌고 나갔지만 이내 벤치로 돌아왔다. ‘이 정도로 기뻐할 수 없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결승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으면 한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이탈리아가 우승하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키예프(우크라이나)=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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