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롬·다음 이어 코스닥 주무르는 벤처女帝’

중앙일보

입력

그룹웨어 인트라넷 전문업체인 버추얼텍의 서지현 사장. 한 마디로 그는 당찬 여성이다. 국내 IT 벤처업계 여성 CEO 1호이자 코스닥에 등록한 인터넷업체 최초의 여사장이기도 하다. 올해 서른일곱으로 미혼인 그는 스스럼이 없다.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그 자체를 싫어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며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인터뷰 또한 여느 CEO와 달리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거나 품위를 갖추려 하지 않는다. 사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때문에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그래서 처음 그를 만나면 오히려 당황할 정도다.
바쁜 그를 지난 23일 오후 4시경 버추얼텍사무실에서 만났다. 성격이 직설적인 것 같다는 질문을 했다.

“(웃으며) 어떤 때는 여성적일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터프하다는 얘기는 안 하는데. 장단점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건방지다고 그러고 어떤 사람은 시원스럽게 얘기 한다고도 그래요”

그런 직설적 성격 때문에 프로젝트를 수주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기술력으로 밀고 나가니까 오히려 인정받은 부분도 있다고 했다.

이날도 그는 6인치 정도의 통굽 구두에 옅은 카키색 바지 위에 스커트를 겹쳐 입는 튀는 패션 스타일이 거의 신세대에 가까웠다.

여기에 통통 튀는 말투와 웃음소리는 다소 피곤기에도 불구하고 힘있었다.

버추얼텍은 지난 해 1월 코스닥에 등록했다. 당시 액면가 5백원에 공모가 6천7백원으로 등록 첫날부터 상한가 행진을 계속했다.

업계에서는 ‘새롬기술, 다음 커뮤니케이션에 이은 코스닥 황제주는 버추얼텍’이라고까지 했다. 지난 23일, 현재 버추얼텍의 주가는 1만1천원. 총 1천2백만 주로 시가총액으로 총자산은 1천3백20억원. 이 가운데 서사장의 지분은 19% 남짓, 2백50억원 정도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자산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서사장은 연세대 전산학과 1회 졸업생인 전문 엔지니어 출신.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개발 쪽보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등 비즈니스 분야에 전념했다. 그런데 코스닥에 등록한 지난 해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피하기까지 했다.

“코스닥에 등록된 후 회사가 돈이 있으니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해요. 그런 다음에 자기네 회사에 투자 좀 해달라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무섭고 두려워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어요.”

그러나 올해부터는 전술을 바꿨다.

“내 성격대로 나가자, 그래서 성격대로 하니 오히려 그쪽에서 틀어져요. 그런데 너무 적극적으로 하다보니 내 몸이 감당하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CEO는 건강이 중요한데 요즘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수영, 스쿼시, 골프 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운동이 특기인데 시간 내기 어려운 게 또 문제다.

“요즘은 너무 힘들어. 건강관리를 하려면 사실 이 인터뷰도 안해야 되는데”라며 다소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차고 창업으로 벤처에 첫발

서사장이 창업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대학 졸업 후 조교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홍익대 부근 반지하실에 프로그램개발 작업실을 마련하면서부터. 때문에 그는 미국 휴렛패커드(HP)의 휴렛과 패커드, 자일랜의 김윤종 사장처럼 한국판 ‘차고 창업’의 주인공으로 불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하청에 하청’을 받아 일반 공장들의 회계·재고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점점 의뢰 받는 일이 많아지자 91년, 개인사업자로 ‘아이오시스템’을 설립했다. 93년부턴 대기업에서도 인정받아 현대자동차, 한국통신 등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94년에는 ‘버추얼아이오시스템’으로 상호 변경 몇 법인 전환을 하고 지금 ‘버추얼텍’의 기반을 다진다. 서사장 또한 프로그래머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탈바꿈한다. 이때부터 제품개발 참여보다는 직접 외부와 접촉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여에 걸친 개발 끝에 국내에선 두 번째로 인트라넷 소프트웨어 ‘인트라웍스’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기업내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강화해 업무의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제품인 인트라웍스는 미국에서 ASP방식으로 서비스되는 조이데스크, 일본어 버전인 인트라 2000 등으로 모습을 바꿔갔다. 또 무선인터넷 버전인 인트라웍스 와이어리스 에디션, 조이데스크 와이어리스 에디션 등으로 발전했다.

영어버전인 조이데스크는 출시 한 달만에 미국의 대표적 인터넷서비스 사업자(ISP)인 프리아이넷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99년 7월, 아예 미국 시애틀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그쪽 인터넷 업계의 동향과 마케팅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현재 미국을 비롯한 독일, 벨기에, 아르헨티나, 홍콩 등 70여 개 ISP를 통하여 1천만명 이상이 버추얼텍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옛날에는 기술이 80이라면 마케팅 영업이 20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40, 마케팅 영업이 60입니다. 제품이 다소 떨어져도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면 잘 팔리는 것이 현실이지요.”

회사가 작을 때는 기술력만 가지고도 가능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마케팅 영업력이 많은 포지션을 차지해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 해외시장에 나가려고 해도 잘 안되는데 같은 제품이라도 미국을 통해 진출하면 서로 사겠다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래서 올해는 해외시장은 미국 현지 법인에게 맡기고 국내 시장을 다질 계획입니다.”

잘 모르는 분야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경영원칙을 지닌 서사장은 지난 해 eCRM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올해에는 웹 에이전시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사업부서에서 일부 해오던 사업을 본격화시킨 것이다.

회사 설립 후 그동안 최소 2배 이상의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는 서사장은 작년 매출을 1백여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순수익은 30∼40%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및 일본 진출을 본격화 하는 올해는 1백5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했다.

리더십을 갖춘 CEO가 되려면 직원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그는 현재 아더앤더슨컨설팅을 통해 사업 방향에 대한 컨설팅도 받어 새 비전을 제시할 작업을 하고 있다. 연세대 전산학과 재학시절 재미난 일화가 있다. 학생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던 80년대 중반 당시 과 대표였던 그는 ‘과 대표’라는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컴퓨터 미팅’ 행사를 기획한다. 하지만 학생회 집행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때 서사장은 컴퓨터에 별 관심 없던 친구들에게 컴퓨터의 실용성과 편리성을 알리자는 순수한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그는 일에 대한 추진력과 함께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한 번 생각난 것은 당장 그 자리에서 해결하지만 지나간 어려운 일은 곧바로 잊어버린다.

현재 부모님과 남동생, 애완견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서사장의 생활신조는 ‘열심히 하자’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열심히 하면 그만큼 운도 찾아온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도 그동안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서사장은 “자기 복은 자기 하기에 달렸다”며 활짝 웃었다.

길인수 기자cyberkid@joongang.co.kr>
사진 백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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