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정통부 IMT-2000정책

중앙일보

입력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잘 봐주십시오" 안병엽(安炳燁)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IMT-2000 동기식 사업자 허가신청 기한을 `우수한 동기식 그랜드컨소시엄 구성이 가시화될 때까지'' 늦춘다고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이같이 하소연했다.

사실 정통부가 지난 2년여 동안 IMT-2000 정책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된 일''이 한번도 없었으니 이런 말이 나올법도 했다.

통신업계는 정통부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움직였고 그때마다 정통부는 업계를 설득, 입장을 조율하려 했지만 결과는 항상 실패로 끝났다.

대표적인 것이 기술표준 논쟁. 정통부는 작년 하반기 사업허가 신청 기한을 1개월 연장해가면서까지 `2동1비''(동기식 사업자 2개, 비동기식 사업자 1개)를 원했으나 결과는 `2비''로 낙착됐다.

SK, LG는 물론 공기업인 한통마저 정통부가 집착했던 동기식을 외면한 것이다.

특히 SK텔레콤이 동기식을 채택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았고, 나머지 동기식 사업자를 뽑기 위해 정부가 유도키로 했던 동기식 그랜드컨소시엄 구성은 기업들의 외면속에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통부는 포항제철, LG, 삼성 등 재벌기업들에 다각적인 방법으로 동기식 사업 참여를 설득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업성 문제, 자금사정, 주주들의 반대 등 기업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장관까지 발벗고 나선 마당에도 기업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잦은 정책변경으로 정통부의 권위는 떨어질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급기야 마지막 1장의 티켓이 남은 동기식 사업자 마저 뽑지 못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초래됐다.

또 비동기식 사업권을 획득한 SK텔레콤, 한국통신도 사업계획서를 통해 정통부에 약속했던 2002년 5월 상용서비스 시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존 2세대 이동전화와 통화가 가능한 듀얼밴드 비동기식 IMT-2000단말기는 2002년말 2003년초에나 출시될 예정이고 2세대 및 동기식과 로밍이가능한 듀얼밴드.듀얼모드 단말기는 2003년말 또는 2004년 초에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정통부는 비동기식 사업자는 듀얼밴드.듀얼모드 기능을 모두 갖춘 단말기가 나와야 상용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동기식 사업자가 비동기식보다 먼저 상용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장선점 효과를 주기 위해 동기식 사업자에게 주는 일종의 인센티브였다.

따라서 비동기식 사업자는 듀얼밴드.모드 단말기가 출시되는 2003년말 또는 2004년에 상용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통부는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를 늦추면서까지 동기식 사업자를 우대하고 있지만 동기식 사업자 후보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통부는 또 난관이 닥칠 때마다 정책판단 착오를 인정하거나 상황변화를 수용해 정책방향을 새로 정하기보다는 `시간벌기''를 통해 업계의 입장을 조율하려 했다.

이번에도 정통부는 그랜드컨소시엄 구성이 지지부진하고 동기식 사업자 선정이 불투명해지자 임시방편책으로 사업허가 신청 기한을 연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기술표준 논란때는 허가신청 기한을 1개월 연장하더니 이번에는 `우수한 그랜드컨소시엄 구성이 가시화될 때까지''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 구체적시한을 명시하지 못함으로써 자신감 마저 무너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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