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화면에 넘쳐나는 선정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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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얼굴이 다양한 만큼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세 가지 유형의 PD가 있다. 아티스트형은 드라마국에 주로 '서식'한다. 저널리스트형은 교양국에 깃을 치고 엔터테이너형은 예능국에 주로 포진한다. 물론 세 가지 특색이 적당히 버무려진 퓨전(fusion) 형도 많다.

PD의 수첩에는 연예인의 전화번호가 잔뜩 적혀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2월의 마지막 화요일 문화방송의 'PD수첩' 은 스포츠신문의 선정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언론개혁이 작금의 화두인 만큼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소재였지만 평소의 'PD수첩' 만큼 후련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갑갑함이 느껴졌다.

"상수도가 있으면 하수도도 있는 것 아니냐" 스포츠신문 관계자의 견해는 변명처럼 들렸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다 못해 소설까지 쓰는 문제에 관해 "인기인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고 대꾸하는 데는 이마가 찌푸려졌다. 차라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하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스포츠신문 기자가 무슨 죄가 있어. 다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일이지" 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도대체 누가 시켰다는 것인가.

'PD수첩' 에는 변조된 목소리와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들이 빈번하게 나온다. 떳떳하게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 신문사의 최고책임자를 인터뷰하면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어떻게 처리할까.

"나는 그저 신문 잘 만들라는 말밖에 안 했다" 고 한다면 그는 자격 미달이다. 잘 나갈 땐 (시청률이건 판매 부수건) 가만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언제 내가 그렇게 만들랬느냐" 며 화까지 내는 건 방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PD수첩' 이 방영된 다음날 같은 시간대에는 '섹션TV 연예통신' 을 방송한다. 스포츠신문보다 오히려 더 기동성 있게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취재해 보도한다. "너희도 똑같지 뭘 그래" 라고 말할 만하다.

그 PD들은 또 무슨 죄가 있는가. 방송이 모두 끝나면 책임자 이름이 나온다. 적어도 본부장급이다. 그 역시 점잔을 떨며 답할 것이다. "내가 방송 잘 만들라고 말했지 언제 그렇게 파파라치처럼 하라고 했느냐" 고.

무슨 큰 사건이 나면 늘 몸통은 다 숨고 깃털만 잡혔다는 얘기가 나온다. 방송과 신문이 서로 견제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애꿎은 현업 기자나 PD만 상처투성이의 전사로 만드는 건 가혹하다. 이젠 몸통이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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