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으로 U턴하기 전에...

중앙일보

입력

지난 해 6월 이후 ‘닷컴 위기론’이 본격화되면서 벤처 기업으로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른바 ‘유턴(U-Turn)족’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작년 상반기 유행병처럼 번졌던 대기업 직원들의 벤처행이 기대만큼의 결과를 안겨주지 못하자 역 엑소더스(逆 Exodus)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로운 근무 조건과 스톡옵션에 따른 대박 등 장밋빛 미래를 설계했던 닷컴인들이 조정기를 맞으면서 거품이 걷히는 인터넷 기업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이전에 몸 담고 있던 기존 조직과 달리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인터넷 기업의 낯선 조직문화에 대한 부적응이 이들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회생의 한 방안으로 인터넷 시대가 개막되면서 삼성, LG 등 대기업을 비롯한 기존 오프라인 기업으로부터 상당수의 인력들이 이탈해 인터넷 업계로 빠져나갔다. 수십 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에서부터 수백 명에 이르는 대기업까지 새롭게 생성되기 시작한 인터넷 기업들은 기존 오프라인 기업으로부터 인력 수혈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1백여 개 이상의 업체로부터 모여든 인재들로 하나의 회사를 구성할 정도였다. 마치 새로운 지역을 제패하기 위해 그 땅에 살고 있던 많은 인종과 민족을 병합한 다민족 국가, 로마제국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는 기술력과 자금력 등 다른 여러 가지 요인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인터넷 기업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이 ‘조직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인터넷 기업은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기술력을 중심으로 구성돼 움직이다보니 구성원들과 함께 어우러져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업의 성장에 걸맞는 조직문화의 취약성이 수시로 노출되곤 한다.

신생 인터넷 기업들은 폐기 처분할 시스템도 없고, 버려야 할 기존의 조직구조나 업무 프로세스가 없다는 점이 사업 초기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서부턴 고유한 조직 문화의 부재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개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한 자유로운 근무 조건이 오히려 조직 내부의 긴장감을 해쳤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술력만 믿고 독불장군식으로 일관하는 일처리는 조직원들 간의 갈등을 빚기 십상이었다.

기술력 하나만 믿고 자신 있게 출발했지만 대기업처럼 조직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업 고유의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내부로 모아지는 구심력이 약해져 그 기업은 더 이상 성장해 나가기 어렵다.

실제로 조직관리론에서도 기업의 인력이 30명을 넘으면 숨겨진 프로젝트 사업을 더 이상 추진하기 불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기존 조직과의 양립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결과 조직화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고 본다.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은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조직문화를 경험한 직원들로 구성돼 있는 만큼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또 인터넷 기업은 어느 분야보다 높은 잠재력을 갖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업체간 경쟁 또한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그리고 업계 구성원들 간의 이합집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무한경쟁의 세계이면서도 개방적인 분위기다. 이 때문인지 현재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기존 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동종업계 전체를 오히려 자신의 무대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IMF를 지나면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허물어진지 오래지만 현재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한 약한 소속감은 기업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인터넷 기업의 경쟁력을 꼽는다면 기민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대기업에 비해 간결한 의사결정으로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인터넷 기업의 기민함이 작은 조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작은 조직의 민첩함을 살리면서 조직을 성장시켜나가기 위해선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융화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 나름의 고유한 내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단단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태만히 한다면 인터넷 기업들은 여러 조직으로부터 모여든 구성원들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해 인력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고 조직 문화의 부재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도태하는 결과를 빚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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