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긴축은 개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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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마이클 스펜스
미국 뉴욕대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최근 독일 집권당인 기민당의 경제·산업계 조직인 독일경제위원회 연례회의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도 연사로 참석했다. 이들은 독일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경쟁력·고용·성장을 회복하려면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시간이 든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독일이 통일 뒤 15년간 겪었던 자체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을 개혁하고, 두 나라를 다시 성장 궤도에 복귀시키려면 우선 그리스 사태의 확산부터 막아야 한다. 남유럽의 재정·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봉착하면서 개인자금이 은행과 국채시장을 떠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은행의 자기자본은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금융 시스템은 더욱 불안해지고 개혁 프로그램의 효율성이 위협받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연합(EU)의 중앙기구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개혁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성과를 거두려면 이들이 나서 개인 자금의 탈출로 인해 생긴 자금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 다만 유로존 3, 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한 지원은 개혁이 추진된 만큼만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의 경쟁력을 올리고 성장을 회복시키려면 노동시장 자유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단기적 위기 관리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당장은 채권 수익률 통제를 통해 은행들이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유로채권 발행은 시기상조다. 개혁 동기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긴축론과 성장론의 논란은 뭐란 말인가. 이런 논란은 상당히 심각한 오해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임금을 동결해 소득 상승을 억제하는 긴축은 2006년 독일이 완결했던 성장 지향적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다. 독일은 고용 유연성과 생산성·경쟁력의 회복에 필요한 부담을 국민 전체가 공평하게 나눠 지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독일의 메시지를 받아본 남유럽에서는 ‘긴축’이 주로 재정 부문에 국한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긴축을 재정적자의 축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잠재적으로 성장을 저해하는 긴축을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지나치게 빠른 재정적자 축소란 경제가 구조적으로 적응하면서 총수요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 속도보다 긴축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는 뜻이다.

 재정적자 축소를 지나치게 빨리 하는 것과, 위험할 정도로 느리게 하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성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부채의 비율을 낮추는 데 긴요하며 따라서 재정 안정화의 관건이 된다. 재정적자 감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면 그 이득은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성장과 고용의 엔진을 다시 가동하려면 여러 정책수단이 필요하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수단과 방법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노동·상품·서비스 시장에서의 경직성과 경쟁 장벽의 제거, 인적자본·기술기반에 대한 투자, 그리고 사회안전망 재구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사회안전망은 구조조정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촉진하는 방식으로 새로 설계돼야 한다.

 이러한 개혁에는 소득과 소비 감소와 함께 사회보장제도의 희생도 요구된다. 하지만 그 혜택은 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고용이라는 형태로 돌아오게 된다. 긴축은 미래의 더 나은 경제적 기회와 사회적 안정을 위해 지금 세대가 먼저 부담을 지는 일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부담을 공평하게 지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이클 스펜스 미국 뉴욕대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