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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결제 중개료, 중소업체선 다 받고 대형업체 편법 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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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바게트 90원, 홈플러스 65원, 이마트 60원, 카페베네 50원…. 소비자가 한번 카드를 긁을 때마다 매출과 별도로 각 업소에 떨어지는 액수다. 건별로는 소액이지만 대형업소에선 이게 모여 연간 수십억원이 된다. 이는 카드사와 가맹점을 이어주는 결제중개업체(VAN, 밴사)가 각종 수수료 조로 지급하는 돈이다. 영세상인이나 소규모 사업자들에겐 이 같은 수수료를 주지 않는다.

 밴사는 독자 통신망(Value Added Network)을 구축해 가맹점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관리하고 카드사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 업체다. 이들은 카드사로부터 결제 액수와 관계없이 건당 88.8~151.5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따라서 이들이 가맹점에 주는 돈은 결국 소비자 지갑에서 나오는 셈이다. 이들은 결제 건수가 많은 대형 가맹점과 계약해야 큰 수입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일정 수수료를 주고서도 결제대행 계약을 맺고 있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이에 대해 편법 리베이트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등은 서울중앙지검에 대형 가맹점의 리베이트 수수 의혹을 수사해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런 관행이 중단되면 밴사는 카드사로부터 받는 건당 수수료를 낮출 수 있고, 이는 카드사들의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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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실이 입수한 밴사들의 내부자료를 보면 밴사들은 카페·빵집 등 프랜차이즈점과 대형마트에 전산비 등의 명목으로 일정한 돈을 고정적으로 지급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액수는 건당 40~90원이며, 비씨·국민카드로 결제된 건수만 따져 지난해 한 업소에 최고 40억원 넘게 지급됐다. 다른 카드까지 고려하면 밴사가 대형 가맹점에 지급한 수수료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주유소들도 건당 80~90원을 받았다.

 이 의원은 “밴사의 기존 네트워크를 이용한 결제 서비스이므로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이 돈은 리베이트로 볼 수밖에 없다”며 “카드사가 밴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상당액이 가맹점 리베이트로 사용돼 결국 높은 카드 수수료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공정 거래관행으로 피해 보는 건 중소가맹점과 소비자들”이라고 덧붙였다.

 공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철도공사는 기차표의 카드결제 서비스를 시작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밴사로부터 건당 30~35원씩 총 69억여원을 시스템 유지보수비 명목으로 받았다. 또 2012년까지 도로공사는 31억여원을, 우정사업본부는 1억4000만원을 기반시설 이용 대가 등으로 받았다. 이 의원은 “공공기관이 밴사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겨 결국 중소상공인의 가맹점 카드 수수료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거래관행은 대형 가맹점을 잡으려는 밴사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했다. 이들은 대형 가맹점과 계약하기 위해 계약 제안서에 금전적 지원을 명기하기도 한다. 한국신용카드결제(KOCES)가 2011년 슈퍼마켓 프랜차이즈 CS유통에 내놓은 제안서에는 ‘신용거래 수수료 80원/건 제공’ ‘현금 영수증 수수료 18원/건 제공’ ‘익익월 지급’이라고 명기돼 있다고 이 의원은 공개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결제시장의 절대갑(甲)인 대형 가맹점이 카드사에겐 수수료를 후려치고, 밴사들에겐 리베이트를 받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밴사와 대형 가맹점들은 “리베이트가 아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입찰에서 싼 수수료를 제시한 곳과 계약하고, 계약에 명시된 수수료를 냈을 뿐 리베이트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은 “밴사가 개별 주유소와 계약하기 때문에 정유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심서현 기자

◆밴(VAN)사업자=독자적인 통신망(VAN·Value Added Network)을 구축해 카드사와 가맹점 간의 결제를 돕는 사업자. 가맹점에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관리하고 카드사로부터 결제 건당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한국정보통신(KICC)·한국신용정보(NICE)·한국신용평가(KIS) 등 16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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