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이치로, '방망이 겨누지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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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 서서 배트를 곧추 세운다. 그리고 그 배트를 투수 쪽을 향해 겨눈다. 마치 진검승부를 눈앞에 둔 사무라이처럼.

일본야구를 자주 본 팬들이라면 이 모션의 주인공이 이치로(시애틀)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대투수가 투구모션에 들어가기 전에 배트를 한번 투수쪽으로 겨냥하는 (일본 매스컴은 이를 두고 '특(特) 포즈'라고 부른다.) 이치로의 이런 제스쳐는 9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치로가 이런 특이한 포즈를 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타격에 집중하면서 배팅의 리듬을 잡기위해서 였지만 일본에 있을 때 이치로의 이런 독특한 행동은 적지않은 헤프닝을 가져오기도 했다.

일례로 98년, 전 롯데의 마무리였던 워렌은 이치로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 사이에 1구를 던져버리기도 했었고, 이치로의 이런 폼이 생소했던 다른 용병투수들에게도 워렌과 같은 플레이가 종종 발생했었다.

앞으로도 이치로가 일본에만 있는다면 그의 이런 타격폼은 충분히 용인받으며, 가끔 헤프닝을 일으키는 정도로만 취급되었겠지만, 문제는 이제 올해부터 이치로의 활동무대가 메이저로 바뀐다는데 있다.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너무 천천히 돌거나 안타를 치고 너무 좋아해도 보복이 들어올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메이저리그에서 이치로의 이런 타격폼은 단순히 '특이하다'고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다. 즉 상대투수의 프라이드를 건드리는 무례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에대해 작년부터 세이부에서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 토니 페르난데스는 "(이치로의 타격폼은) 메이저리그에서는 모욕행위이자 도전행위로 취급받기 십상이다."며 경고를 했었고, 작년 미일대항전때 방일했던 카를로스 델가도와 로베르토 알로마역시 "보복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자제를 충고했다.

이런 이들의 충고가 뇌리에 남아 있었는지 이치로는 미국에 온 후 그만의 '특(特) 포즈'를 자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2일 오른쪽 옆구리 부상이후 약 7개월만에 재개했던 야외 배팅에서도 이치로는 '그만의 폼'을 취하지 않고 111회의 프리배팅을 휘둘렀다.

이치로로선 그런 제스쳐가 자기나름의 타격리듬을 잡기위한 행동일지라도 상대에 대한 모욕의 소지가 있기에 그런 모션을 자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애틀의 베리 타격코치와 이 문제에 대해 상담까지 한 이치로는 시범경기에서 상대의 반응을 살펴가며 타격폼을 수정할 방침이다.

이렇게 이치로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던 '특 포즈'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한 배경에는 폼보다 타격 자체를 중요시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메이저에서 인상적인 결과를 내는게 우선이기에 세세한 부분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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