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여름에 만든 회사 올 여름 오기전 떠나겠다"

중앙일보

입력

85년 메디슨을 창업하고 국내 벤처기업 활성화의 한 축을 맡았던 이민화 회장이 물러난다. 성공 벤처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회장이 경영권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개인지분까지 내놓고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힌 것이다.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48)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이회장은 최근 오스트리아 자회사인 크레츠테크닉 매각 작업을 완료하고 기업 분할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을 완료하는 대로 메디슨 경영에서 일절 손을 뗄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회장의 지론은 기업은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 지난 85년 7월 메디슨을 창업한 이래 15년이 지난 지금 이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시기가 됐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 물러나면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회장측은 설명한다.

현재 메디슨은 상반기 중으로 의료기기 제조 부문 및 벤처투자 부문 등 2개 기업으로 분리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의료기기 제조 부문은 현 공동대표인 이승우 사장 체제로, 벤처투자 부문은 외부 영입 또는 내부 인사를 승진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메디슨의 당면 과제는 크레츠테크닉 매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과 기업 분리 문제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완수하는 일이다. 현재 진행대로라면 크레츠 문제는 3월 말, 구조조정은 5∼6월이 되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는 이회장이 경영일선에 남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 동안 과도한 유가증권 평가차익을 믿고 단기부채를 간과했다는 점과 주식매각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유동성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후임자가 메디슨을 이끌어가는데 부담을 안겨 주지 않겠다는 이회장의 세심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사실 이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은 어느 정도 예고됐었다. 지난 해 6월부터 메디슨이 ‘유동성 위기’로 인한 주가 폭락의 멍에를 이회장이 혼자 온몸으로 져온 것이다. 때문에 이회장의 퇴진은 결과적으로 지난 해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데 대해 최고 경영자로서 책임을 진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이회장이 밝히는 퇴임의 변은 “기업은 지속적으로 변해야 하고, 이제 그럴 만한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회장은 자신의 경영권뿐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회사의 지분(6.2%)까지 회사를 위해 내놓을 뜻을 비쳤다고 측근은 전한다. ‘성공 벤처’의 대명사로 메디슨의 창업자인 이회장이 젊음을 불태워온 회사를 떠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회사 지분도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지난 해 말부터 업계에서는 이회장이 사퇴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때마다 회장, 사장, 부사장으로 구성된 메디슨 경영위원회에서 만류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회장의 퇴진은 메디슨에게 큰 의미가 있다. 85년 메디슨을 창업한 이래 앞선 통찰력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메디슨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민화 없는 메디슨호’가 어떻게 향해할지 업계 관계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메디슨이 앞장서 도입한 이사회 등 선진적인 경영 시스템도 제대로 돌아갈지 여부를 검증받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회장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85년 이래 줄곧 메디슨과 함께 성장해온 이회장이 기득권을 전부 포기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더 큰 일’을 펼칠 가능성이 열렸다는 분석도 있다.

95년 한국벤처기업협회 설립을 주도하며 초대회장을 역임한 이회장은 국내 벤처산업계의 빼놓을 수 없는 산 증인이다. 협회 창립 후에는 주로 벤처 인프라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국내 벤처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던 코스닥 증권 설립,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스톡옵션과 기술을 담보로 하는 기술 담보제 등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번 퇴진이 메디슨이라는 한정된 영역을 벗어나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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