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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대신 '보험사 상품' 권하는 은행 직원…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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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지점. 창구에서 “연금저축에 들고 싶다”고 하자 대뜸 보험상품 담당 직원이 나타났다. 그는 9개 생명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 상품 비교표를 건네며 “공시이율이 4%대 후반으로 은행보다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은행과 자산운용사도 같은 상품을 판다는 얘기는 아예 없었다. “은행 것은 없느냐”고 묻자 “금리가 낮아 인기가 없다. 보험사 상품이 훨씬 낫다”고 가입을 권했다.

 은행의 방카슈랑스(은행이 파는 보험상품) 편애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자기 상품보다 보험 영업에 열을 올린다.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예금을 받느니 짭짤한 보험 판매 수수료를 챙기자는 셈법이 깔려 있다. 불완전판매가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다.

 대표적인 게 연금저축이다. 연금저축은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직장인의 필수 재테크 상품으로 꼽힌다. 은행 연금저축신탁, 증권사 연금저축펀드, 생명보험사 연금저축보험 등 세 종류가 있다. 하지만 요즘 은행에선 신탁보다 보험을 파는 데 더 힘을 쏟는다.

 11일 여의도 지역 시중은행 세 곳을 돌아본 결과도 그랬다. “연금저축을 추천해 달라”는 요구에 “신탁·펀드·보험이 있다”고 제대로 알려준 지점은 한 곳에 불과했다. 다른 두 곳은 신탁과 펀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보험 상품만 소개했다. 은행신탁에 대해 추가로 묻자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곳은 “있긴 한데 금리(수익률)가 낮다”고 말했다. 은행신탁과 보험의 수익률 계산법이 다르다는 설명은 없었다. 은행신탁은 고객이 낸 돈 전체를 기준으로 수익률을 매기지만 보험은 10%가 넘는 사업비를 뺀 적립액을 기준으로 공시이율을 따진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실질수익률은 펀드·은행·보험 순으로 높다. 또 다른 은행에선 “연금저축은 보험사에서만 나온다”고 황당한 설명을 했다.

 이런 사정은 즉시연금과 변액보험도 비슷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가하락으로 펀드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되자 은행들은 투자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변액보험을 적극 추천했다. 노후에 대비하려는 고객들에겐 요즘 예외 없이 즉시연금을 권한다. 지난해 생명보험사의 초회 보험료(1년 사이 체결된 신규 계약에서 들어온 보험료) 수입 14조6615억원 중 6조1039억원(41.6%)이 은행에서 나왔다.

 은행은 “영업환경이 나빠져 보험 영업에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금리를 낮춰가며 수신을 줄이는 판인데 굳이 우리 상품을 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더 큰 이유는 단기간에 짭짤한 보험 판매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이 연금저축보험을 팔면 보험료의 2.5~3.4% 정도를 수수료로 챙긴다. 연 400만원을 납입하는 연금저축보험을 팔면 해마다 12만원가량이 은행 몫으로 떨어진다. 같은 금액의 은행 연금저축신탁 수수료는 적립액의 0.7%인 2만8000원에 불과하다.

 문제는 은행 창구 직원의 전문성이 보통 보험 설계사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자가 방문한 세 곳의 은행 모두에서 사업비나 해약 환급금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방카슈랑스 (Bancassurance) 프랑스어로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 은행과 보험사가 연계해 상품을 개발,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1986년 프랑스 은행 크레디아그리콜이 생명보험사 프레디카를 설립해 은행 창구에서 보험 상품을 판 것이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2003년 8월에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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