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때 빼는 공학' 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의 핵잠수함 엔진 냉각배관 등에 달라붙는 해양미생물이나 칼슘 등의 청소 주기를 한두달씩만 늦출 수 있으면 전세계 잠수함 기지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것은 대부분 냉각배관 등 바닷물에 노출된 중요 부위에 때가 끼여 제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캐나다에서 열린 한 ‘때(Fouling) 공학’학회에 참석한 미국 전문가의 이야기다.

부식이나 이물질들이 달라붙어 생기는 때는 인류를 괴롭게 하고 해결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게 하는 골칫거리 중의 하나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첨단기기들이 개발될 수록 때 문제는 더욱 속을 썩이고 있는 것이다.

하찮은 것 처럼 보이는 해양미생물들이 최신예 핵잠수함을 겨우 쉬지 않고 몇개월 밖에 항해하지 못하게 하거나, 인공혈관 등 인공장기에는 지방이 쌓여 몇년에 한번씩 교체 수술을 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에어컨용 냉각수 순환 펌프에 칼슘 등이 달라붙어 전기·가스 등 에너지를 10∼20% 정도 더 들게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때 공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 주요 연구소와 산업계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첨단 기술의 산업화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때 공학은 금속이 부식 되거나 파이프 등에 이물질이 달라붙어 물·화공약 등 물질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해결하려는 학문. 예를 들면 하수도를 청소하지 않고 계속 쓰면 막혀 물이 흐르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 각종 기기 등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때 처리 기술로는 ▶배관의 직경을 적정 이론치보다 30∼40% 크게 하거나▶물 속에 떠 있는 물질이 결정을 이뤄 배관에 달라붙지 않게 약품 처리를 한다. 최근 개발된 첨단 기술로는 인공혈관 등의 표면 성질을 바꿔 지방 등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방법 등이 응용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석근 박사는 “각 나라마다 각종 때를 청소하는 데 GNP(국민총생산) 의 1∼2%를 투자하고 있다”며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하면 이런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뿐아니라 기기 수명도 크게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아직 때 예방에 관한 한 거의 방치하다시피하고 있다는 점이다.기껏 봄철에 독한 염산으로 녹슬고 때가 낀 보일러·냉각배관 등을 씻어 내는 게 거의 전부다. 그나마도 태반이 안하고 있다.

그래서 빌딩이나 집은 지은지 10여년만 되면 각종 배관을 새로 해 넣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고, 수도관도 삭아 곳곳에서 물이 새는 게 우리나라 실정이다.

이미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은 수돗물에도 인체에 무해한 수도관 부식방지제를 넣어 보내고 있고, 아파트 단지나 빌딩들은 배관보호 전문 수(水) 처리업체를 활용하고 있는 등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낀 때를 청소하기 보다 미리 끼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출신들이 모여 만든 수 처리 전문 벤처기업인 ㈜애큐랩의 심상희 박사는 “보일러나 냉방용 냉각기 배관에는 연간 약 0.6mm 두께의 칼슘 등의 때가 끼는 데 이 때가 기름을 20% 가까이 더 들게 한다”고 말했다. 또 배관 부식도 일어나 전체를 갈아야 하기도 한다는 것.

때만 잘 처리해도 국가적으로 10∼20%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원의 수명을 엄청나게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지역난방공사가 지난해 수원 영통지구내 3천여세대의 황골주공아파트의 보일러 배관에 때 예방 약품 처리를 한 결과 1년이 다돼도록 새 것 처럼 유지되고 있다. 예전에는 녹과 칼슘 등이 엉켜 염산으로 씻어내야 했고 배관의 마모도 심했다.때가 끼는 것을 예방하기 때문에 열 효율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배관을 반 영구적으로 쓸 수 있을 것으로 공사측은 보고 있다. 가구당 들어가는 부담은 연간 약 3천원꼴이다.

한국부식(腐蝕) 학회의 한 전문가는 “문제는 대부분의 빌딩이나 아파트 관리자들이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