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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 속 똑똑한 집 꿈꾸고 있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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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26면

1 드림하 우스 ‘ PA P I ’.2005년 아이치현 만국박람회를 위해 도요타홈이 만든 스마트하우스다.2 일본식 정원을 즐길 수있는 손님 접대용 다다미방.3 거실. 기상시간 1시간 전부터 천천히 커튼이 열리며 아침을 깨운다.4 주차장. 정전 시에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로부터 전원을 공급받을 수 있다.5 침실. ‘PAPI’는 집안의 전자제품과 실내 습도, 온도등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미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1990년 작 영화 ‘토탈 리콜’의 첫 장면은 2084년의 미래 주택이다. 숲 속의 집처럼 보이지만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은 하나의 디스플레이 화면이다. 날씨 변화도 보여주고, TV가 대형 동영상 전화기가 되기도 한다. 가상 현실의 세계를 앞장서 제시한 영화로 많은 SF영화들의 전범이 됐다. 2054년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는 집 안에 있는 여러 개 투명 평판 디스플레이가 손동작과 안구 인식 등으로 작동되는 장면이 돋보였다. 복제인간을 그린 영화 ‘아일랜드’(2005) 속 미래 주거공간에서는 침실에서 수면상태를, 변기에서는 소변을 분석해 일일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그날의 식단도 건강 상태에 맞춰 조절된다. 이처럼 영화나 만화, 소설 등 공상과학 세계에서 미래의 집은 상상 속의 작업이다. 현실적으로는 미래의 집에 대한 추구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4> 미래 주택

21세기를 맞으며 각국은 뉴 밀레니엄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미래의 집 연구 또한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미국 MIT에서는 1995년 『Being Digital』을 쓴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미디어랩(media lab)을 출범시켰다. 이곳에서 하버드 의대와 미국노인협회(AARP) 및 여러 산업체의 참여 아래 2004년 7월 39평 크기 아파트 형식의 실험공간인 플레이스 랩(Place lab)을 건설했다. 7개의 미래 환경 영역을 설정하고, 초고령 사회 진입에 대비하는 연구 및 개발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조지아테크에서 2002년 세운 어웨어 홈(Aware Home)이나 스웨덴 왕립기술과학대학이 주축이 된 커뮤니케이션 홈(com. Home), 벨기에의 리빙 투머로(Living tomorrow) 등도 21세기 미래의 집을 선점하기 위해 맹진 중이다. 이들의 공동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IT기술의 결과물인 사이버 공간의 확장이다. 물리적 공간 외에 가상현실이 더해지는 상황에 따른 변화 연구가 필수적이 됐다. 유비쿼터스 공간의 탄생이다. 둘째는 기후재난과 탄소저감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지속가능성의 탐구다. 녹색성장으로 함축되는 친환경 에너지 자급형 주거형태 연구개발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본의 ‘파피 홈(PAPI Dream Home)’이 탄생했다. PAPI는 Pal(사이가 좋다)과 Pizzazz(활기 있다)의 합성어다. 도쿄대 사카무라 겐 교수팀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가능한 주거공간의 실현을 목표로 1989년 트론(TRON·The Real-time Operating Nucleus)하우스를 건립했다. 여러 차례 실험과 개축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던 중, 2005년 아이치 엑스포를 준비하던 도요타사의 지원으로 PAPI를 선보이게 됐다.

일본에는 우리나라 영·호남처럼 관동(간토·도쿄 중심지역)과 관서(간사이·오사카 중심지역) 지방이 있다. 이 두 지방의 대립 또한 역사가 있다. 두 지역을 구분하는 중부지역에 동해(도카이·나고야 중심지역) 지방이 있고, 그곳에 나고야시와 도요타시를 포함한 아이치현이 있다.
아이치 엑스포는 이런 배경 아래 21세기를 여는 일본의 ‘희망 프로젝트’였다. 국가적으로는 일본의 재기, 지역적으로는 관동·관서의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국토개발, 산업적으로는 렉서스를 앞세운 도요타의 미래 등 어쩌면 완벽한 시나리오의 행사였다. 행사의 주역은 당연히 도요타였고, 도쿄대 사카무라 교수의 트론하우스 또한 준비된 작품이었다.

미래주택 PAPI 홈은 아이치 엑스포장의 도요타 자동차박물관 옆 조용한 언덕 위에 있었다. 사카무라 교수팀이 PAPI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구했다.
① 식물의 광합성을 모방해 개발한 외벽 에너지 시스템
② 유비쿼터스 커뮤니케이터에 의한 네트워크 인식 및 최적 제어 방식
③ 자동차와 집이 같은 시스템 하에서 에너지나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
④ 가족 구성원의 스타일이나 동작 인식들을 통한 자동 보안 시스템
⑤ 사람의 건강 상태와 심리 상태가 연계돼 작동하는 홈시어터
⑥ 인텔리전트 수납공간과 일체화된 부엌·식탁 시스템
⑦ 생체 정보센서를 활용한 기상조절기능 등 수면의 질을 보장하는 쾌적 수면 침실

이런 요소 기술들을 계속 이 집에서 실험하고 연구개발하고자 했다. PAPI 홈은 외피 해결과 옥외 공간까지 연계해 각종 미래주택 연구 중 가장 집과 가까운 형상을 갖춘 솔루션이었다.

더 나아가 도요타홈의 시미즈 뎃타(淸水哲太) 회장은 주택산업의 미래에 대한 포부도 발표했다. 즉 지금까지의 현장생산 방식을 자동차처럼 공장생산 방식으로 전환시켜 품질 100% 보장, 크레임 없는 시공 및 비용 대비 효과를 2배로 하는 주택생산 방식의 전면적 전환을 주창한 것이다. 미래주택 생산의 세계 제패를 위한 속내도 드러낸 행사였다. 이렇게 아이치 엑스포는 70년 오사카, 85년 쓰쿠바 이후 일본 내 세 번째 엑스포로서 21세기 재기를 꿈꾼 잔치였다.
그러나 이 행사 이후에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계속됐다. 대규모 리콜 사태로 도요타의 눈물도 이어졌다. 나고야의 중부지방 중흥론도 미뤄졌다. 최근 도요타 홈에 문의한 결과 “PAPI 홈은 2008년 문을 닫았고, 현재로서는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순히 진보한 기술의 조합만으로는 새로움을 만들 수 없다. PAPI 홈의 요소 기술들이나 도요타의 개성 없는 조립식 생산체계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집의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미래의 집은 새로운 기술력과 자재의 총화 속에서 개인의 삶이 가치지향적으로 융합해 건축될 때 창조되는 것이다. 근대 조형의 중심이 된 바우하우스의 시대정신이나 애플사의 모토처럼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가치가 구현되고 창조적 디자인으로 만들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수에서는 지금 엑스포가 한창이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또 산업적으로 우리는 무슨 전략을 구상하고 있나. 서양 문명의 축제 장소로서의 엑스포를 150년 만에 동아시아에서 구현하면서 일본, 중국, 한국은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얼마 전 다녀온 여수 밤바다에서 한류 스타의 노래는 들려오는데, 한국이 선택한 미래의 집 ‘엑스포 타운’은 오동도를 내려다보는 고층 아파트였다. 그것도 LH공사에서 턴키 발주한 ‘작품’(?)이라니. 파리의 발레리 줄레조가 『아파트 공화국』을 쓸 때는 그래도 한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텐데….



최영철씨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건축가다. 이 같은 생각을 갖고 국가건축 정책위원으로 활동했다. 단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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