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화로 번 돈 되돌려줘야 서로 산다"

중앙일보

입력

20여 년 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외판을 얼마간 한 적이 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시작했는데 꽤 실적이 있어서 가을 학기 개학을 하고도 꽤나 바쁘게 돌아다닌 것으로 기억한다. PC 한 대가 미화 1만불 정도의 고가 제품이었고, 판매가의 5%를 수고비로 받았으니 수입이 괜찮았을 법도 한데 결국 무료 서비스의 부담으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PC를 판매할 때마다 무상으로 컴퓨터 개인 교습도 해 주고 간단한 소프트웨어도 만들어주는 등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 때문에 좋은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판매량이 많아질수록 시간적으로 부담이 커지고, 결국에는 그 부담으로 아르바이트 자체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포트리스 2 유료화 분쟁’을 보면서 갑자기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포트리스 2 유료화 분쟁’은 사업자가 포트리스 2 게임의 유료화를 요구하면서 PC방과 첨예하게 대립한 사건이다. 결국 타협점을 찾아 유료화에 합의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발생할 콘텐츠 유료화 전쟁의 시작을 보여줬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사건을 유료화를 위한 단순한 대립으로서가 아닌 닷컴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한다.

사실상 인터넷은 무상 서비스와 무료 콘텐츠 제공을 통해서 이만큼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초기에는 무상 서비스를 통해 회원을 확보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리거나 점차적인 유료화로 전환하는 모델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었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가 많아질수록 광고를 통한 수익 모델은 힘을 잃어가고, 무료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유료화를 거북해 하게 되었다. 게임이나 성인 인터넷방송국 같은 인기 종목이 아니고서는 유료화로의 전환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나 아주 단순한 산술 계산을 통해 보면 무료화는 곧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비스를 개발하고 인프라를 갖추는 데까지는 어떻게 초기 투자비로 충당한다고 할지라도 서비스 제공과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는 계속적인 투자가 요구되므로 무한정 투자자들에게 의존할 수가 없다. 이때 사업자가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 ‘수익 모델’이다.

‘가진 돈은 얼마인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를 계산하는 사업가를 종종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주력 사업으로 키워놓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수익 모델을 찾는 게 아니라, 결국 재테크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는 황당한 사실이다.

확실한 수익 모델이란 인터넷 서비스, 혹은 콘텐츠를 유료화하는 길이며, 유료화를 위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서비스의 차별화와 양질의 콘텐츠로 사용자 스스로 유료화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와 사용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로 유료화와 무료화를 고집한다면 결국 ‘닭과 계란’의 관계처럼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하는 동안 무료화에 지친 닷컴 기업은 수익성의 부재로 결국 도태되고, 사용자는 그 나마의 서비스마저 잃게 될 것이다.

무료화는 단기적으로 사용자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단기간에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무료화는 시장에서 비정상적인 행위임을 이해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용자는 비록 양질의 콘텐츠는 아닐지라도 콘텐츠의 수준에 맞는 돈을 지불하는 여유를 보여야 한다.

결국 이러한 돈은 우수한 콘텐츠를 위한 투자가 되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인터넷 사업의 강국이 되는 지름길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의 강국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단기적이고 이기적인 욕심을 가진 사업자가 없기를 바란다. 만일 유료화를 통한 수익이 사업자 개인의 배 불리기를 위해 착복된다면 사용자가 다시 외면하는 암흑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사업자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재투자해 우수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만일 아직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업자라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유료화하는 만큼의 주식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상호 공생의 방식은 단순한 사업자와 사용자의 안목에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인터넷은 지식과 정보의 상품화가 주류를 이룰 것이고, 이를 빨리 실현하는 국가가 ‘인터넷 강국’이 될 것이다. 몇 명이 인터넷 인구인가를 발표하는 숫자놀음에 집착하기에는 인터넷의 변화가 너무 심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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