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의 현실, 상상의 현실, '아바론'의 가상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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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의 '아바론'은 일종의 '체험 영화'다. 이 영화가 주제, 플롯, 스타일을 넘어서 충격을, 그리고 다중적인 감각을 몸소 체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상 현실 게임,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가 뒤섞인 이 영화를 볼 때 그래서 가장 불편한 것은 협소한 '현실의 극장'이었다.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자. 1952년에 헤이리그는 '센소라마 시뮬레이터'라는 3차원 입체 놀이기구를 만들었다. 헤이리그는 젊은 시절부터 영화에 빠져 있었고, 1950년대초 미국에서 일반 화면보다 더 큰 가시면적을 지닌 '시네라마'라는 새로운 영화 제작 시스템에 매혹되었다. 헤이리그는 다중 감지 경험의 가능성을 실현해 보고 싶었다.

헤이리그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관객이 객석에 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상상의 투명 벽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화면이 크게 확대되면 관객 자신이 영화의 장면에 개입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여겼다.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 영화의 미래는 실제와 같은 총체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영화 창조를 의미한다고 헤이리그는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센소라마 시뮬레이터'를 그래서 '체험 극장'이라고 불렀다.

물론 '체험 극장'의 원류를 추적한다면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또한 떠올릴 수 있다. 그가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 불렀던 오페라는 시각, 청각, 율동, 드라마를 결합해 청중들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일종의 가상 현실이 만들어진 셈이다. '파르지팔'이 성배를 찾는 중세 기사들의 영적인 욕망을 표현한 것처럼 '아바론'은 중세 기사의 옷을 입은 게이머들이 장중한 오페라의 선율에 따라 가상 세계를 떠돌며 모험을 벌이는 것을 그리고 있다.

신비한 꿈처럼 보이는 이런 세계는 비관과 낙관의 꼬리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실 가상 현실의 출현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예술에서의 아방가르드가 종말을 고한 시기인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급속하게 발전했다. 유토피아적인 상상력이 종말을 고한 지점에서 가상 현실의 판타지가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시이 마모루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떠올리게 만드는 폴란드의 음울한 도시를 배경으로 가상 현실 세계를 만들어낸 것도 단순한 의도는 아닐 듯 싶다.

아바론의 가상 현실은 도피의 현실이자 상상력의 현실이다. 보는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가상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한 번 뿐인 삶을 여러번 되풀이하는 게임의 세계, 다중 인격을 가능케 하는 캐릭터 선정,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잊게 만드는 가상 현실은 인간의 몸을 무중력 상태로 내몰고 거대한 매트릭스의 미로에 빠져들게 한다. 폴 비를리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이제 지금 몇 시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계(시간 계측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계측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가상 현실이 자본주의의 소비주의와 이미지 소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포기할 순 없을 것이다. 유토피아적인 상상력이 이제 가상 현실을 만들어내는 힘, 다시 말해 예술적인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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