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간 갈고 닦은 절창 감탄과 찬사를 패티 김에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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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패티 김

패티 김은 온통 ‘관객 생각’으로 가득 찬 듯했다.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은퇴공연에서 그가 일흔넷의 나이를 잊고 혼신을 다할 수 있었던 힘은 관객에게 최대한을 선사하려는 감사의 마음, 봉사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그는 고별공연 첫 무대가 서울임을 알린 ‘서울의 모정’을 시작으로 ‘못 잊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연인의 길’ ‘가시나무새’ ‘사랑은 생명의 꽃’ 등 자신의 골든 히트곡을 열창했다. 노랫말 중 ‘당신’이나 ‘그대’ ‘유(you)’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객석을 향해 팔을 벌렸다.

 이 노래들은 평상시 남녀의 사랑·이별 노래였지만 이날만은 관객들을 향한 헌정의 메시지로 변했다. 패티 김은 당당하고 건강한 모습, 그리고 최고의 가창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자 하는 마음에 은퇴라는 용단을 내렸다. 체력을 위해 1500m 수영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은 것은 모두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첫 가요 히트곡인 ‘초우’(1962)를 소개하면서 “이 노래가 50년이 됐습니다. 제가 정말 노래 오래했네요!”라고 소회를 밝히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1958년 연습생 시절을 거쳐 이듬해 내놓은 팝송 번안곡 ‘사랑의 맹세(Till)’로 따지면 그의 노래이력은 자그마치 54년에 달한다. 분명 패티 김의 고령을 감안하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첫 노래에서 사라졌고 공연 내내 객석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경이감으로 뒤덮였다.

 54년간 다져진 무궁한 공력의 포스와 카리스마가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연인의 길’ ‘가시나무새’를 부를 때는 전성기라고 할 40대 중반의 파워풀하고 섬세한 가창 그대로였다. 5년 전 세종문화회관의 50주년 기념공연 때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음을 다스렸고 우려했던 고음도 깨끗이 나왔다. 관객들은 “너무너무 시원하다!”를 연발했고 누군가는 “어쩜 할머니가 저렇게 노래할 수 있나?” 하며 탄성을 질렀다.

 은발 노(老)가수를 환송하듯 세트는 성대했고 조명은 화려했다. 후반부 앉아있던 의자가 갑자기 20m 공중에 솟아오른 순간은 이날의 하이라이트. 여기서 그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다가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관객 1만여 명도 울먹였다.

 패티 김은 ‘석양 질 때의 노을빛이 세상을 붉게 장식했을 때의 모습으로’ 남기를 소망해왔다. 이날 공연장이 그랬다. 언제나 최고 가수였지만 이 공연으로 그는 ‘역사적 레전드’를 예약했다.

한편 패티 김의 초청으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공연을 관람했다. 서울시 환경미화원과 가족 1500여 명도 초청받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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