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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춘남녀의 사랑과 실연 그린 '수쥬'

중앙일보

입력

동화의 환상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러브 스토리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더럽기만 하다.

쓰러질 듯한 건물,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 밤거리의 싸구려 술집 등. 하지만 이같은 사실적인 공간이 오히려 영화의 설득력을 높인다.

얘기는 분명 꾸며낸 것이 확실한데 작위적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한 편의 서글픈 사랑이 관객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분주한 일상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영원한 사랑이라는, 일면 평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전혀 진부하지 않게 빚어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제목의 '수쥬' 는 중국 상하이(上海)시를 가로지르는 강인 쑤저우하(蘇州河)의 영어식 발음. 산업화에 따른 각종 폐기물과 생활하수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영화는 이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네 젊은이의 사랑과 실연을 다룬다.

상영 내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내(감독의 분신)가 영화를 끌어가는 것도 흥미롭다. 비디오 촬영 기사인 나는 술집의 수족관에서 인어분장으로 헤엄치는 메메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메메이는 나에게 특별한 요구를 한다. 한때 사랑했던 소녀 무단을 찾아 거리를 뒤지는 오토바이 택배배달원인 마르다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느냐고…. 이후 영화는 이들 네 명의 사랑담이 교차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한다.

감독은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로우 예(婁燁). 다소 거칠고 자주 흔들리는 디지털 화면에 중국 청춘남녀의 현재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등장해 다양한 영상실험을 하고 있는 중국 젊은 감독들의 단면을 볼 수 있다.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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