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은행에 또 '검은돈' 흘러들어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권좌에서 쫓겨난 조셉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 부부가 받은 뇌물을 시티은행 계좌에 넣어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최대 금융기관인 시티은행은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로 구설에 오른 적이 몇번 있다.

지난주 필리핀 시위대 수천명은 에스트라다 집 근처의 시티은행 지점을 에워싸고 예금인출을 막아달라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필리핀 당국은 인출금지 조치를 내렸다.

에스트라다 부부가 가지고 있는 시티은행 계좌는 그가 부통령이었던 1996년 개설한 자신의 것과 85년 부인 에헤르시토가 만든 두 개다.

두 계좌에는 3백만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티은행 마닐라지점의 부지점장 빅터 림은 올해 초 에스트라다의 탄핵재판에서 "99년 10월 4일 에헤르시토의 대리인이 은행 영업마감 직후 들어와 수표 20만달러를 입금했다" 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돈이 루이스 싱손 일로코스수르주 주지사가 준 뇌물의 일부임이 밝혀졌다.

싱손 주지사는 99년과 98년에 에스트라다에게 수백만달러를 건넸다고 증언하면서 필리핀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시티은행이 부정한 돈의 피난처로 화제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전 멕시코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의 동생 라울 살리나스 드고르타리.전 파키스탄 총리 베르지르 부토의 남편.나이지리아 독재자였던 사니 아바차 장군의 아들 등도 '검은 돈' 의 관리처로 씨티은행을 선택했었다.

이런 문제로 99년 11월에는 씨티그룹의 존 리드 공동회장이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 의원들의 추궁을 받기도 했다.

한편 미 정부는 자국 금융기관들이 '비밀보장' 에 철저해 개도국 지도자들의 불법자금 도피처로 이용되는 사례가 늘자 올해 초 새로운 돈세탁 방지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미 재무부와 주요 은행들이 회의를 열고 외국 지도자나 친지들이 의심가는 거액을 맡길 경우 그 내역을 금융당국에 통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실효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현지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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