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주목받았던 신인들 (3) - 9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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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에 이어 90년 시즌에도 국가대표 출신 대형신인들이 대거 입단하면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가장 주목을 받았던 신인은 최동원,선동렬의 대형투수 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았던 박동희(부산고-고려대)였다. 고려대를 졸업 후 미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입단제의를 받기도 했던 그는 1억 5천만원이라는 당시 신인사상 최고계약금(종전 선동렬의 1억3천만원)을 받고 롯데에 전격 입단하게 된다.

1.'슈퍼 베이비' 박동희

과연 그가 선동렬의 아성을 무너뜨릴 것인지 큰 관심을 모았는데 처음 프로무대에 선을 보였던 태평양과의 시범경기는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될 정도로 매스컴의 관심 또한 대단하였다.

그러나 지대한 관심에 대해 부담감 탓이었을까. 입단 첫해 그의 성적은 10승 7패라는 지극히 평범한 성적에 머물고 말았다.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OB와의 경기서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고 구속인 153km의 강속구를 구사했을 만큼 그의 강속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이듬해 91시즌에는 14승, 92시즌에는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아마시절의 위용을 과시하는가 했지만 93시즌 이후에는 눈에 띌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채 (마무리로 전업하며 31세이브 포인트를 올린 94시즌을 제외하고) 항상 '슈퍼 베이비'라는 수식어가 그의 앞에 따라다니게 된다.

2. 신인 타자 3인방의 돌풍

박동희 외에도 각 팀별로 국가대표 출신 신인들이 대거 입단하였는데 그 중 LG의 김동수(서울고 - 한양대),태평양의 김경기(동산고-고려대),해태의 이호성(광주일고 - 연세대)등 타자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대형신인들이 대거 입단하였다.

먼저 신인왕을 차지한 김동수는 신인 답지 않은 차분한 경기운영,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타격으로 서울 연고팀 사상 처음이자 소속팀의 창단 첫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당시 LG 감독이었던 백인천 감독의 '김동수 길들이기'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아마 시절부터 화려한 경력을 과시하며 프로무대에 뛰어든 김동수는 구단 안팎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아왔다. 이런 주변 환경탓에 다소 자만감이 들 수도 있을텐데, 선수 길들이기에 일가견이 있는 백 감독이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동계훈련 기간중 김동수는 느닷없이 2군행 선고를 받는데 야구를 시작한 이래 한번도 주전에서 밀려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는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던 그에게 다시한번 느닷없는 백감독의 지시가 떨어지는 데 다름아닌 LG 구단의 새 유니폼 홍보모델로 발탁된 것이다. MBC를 인수하고 새로이 프로무대에 뛰어든 LG는 언론 홍보용으로 새 유니폼을 공개하는데 당시 LG에는 김재박,이광은,김상훈,김용수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간판급 선수들이 유니폼 공개와 같은 구단 홍보행사에 모델로 발탁되는 것이 관례인 것을 감안할 때 신인 김동수의 모델발탁은 그만큼 파격적인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백인천 감독의 김동수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얼마나 깊었는 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결국 김동수는 백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뛰어난 투수리드와 0.290의 타율에 12홈련을 기록하는 등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을 거머쥐게 된다.

당시 해태 야수사상 최고계약금(2,700만원)을 받고 입단한 호타준족의 이호성 역시 입단과 동시에 주전자리를 꿰차며 0.304의 타율 7홈런의 호성적을 거두며 골든 글러브를 거머쥐는 영예를 안게된다.

또한 인천 야구의 거물 김진영 감독의 아들이자 팀내 거포 부재의 고민을 해결해 줄 기대주로 주목을 받으며 태평양에 입단한 김경기 역시 0.285의 타율에 타점 5위(68점),최다안타 7위(118)에 오르며 신인 돌풍의 한 몫을 담당한다.

3. 예상치 못한 잠수함 돌풍

90년 시즌의 또 하나의 신인 돌풍은 다름아닌 삼성의 신예 잠수함 투수 이태일(영남대 졸)이었다. 대학 4학년때 9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지만 박동희,김동수,김경기,이호성 등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신인 사상 최초로 노히트 노런(8.12 대 롯데전)을 기록하면서 그는 단숨에 김동수를 위협할 만한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한다. 전반기에는 3패에 그쳤던 그는 후반기부터 삼성의 투수 로테이션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면서 무려 13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한다.

4.미완의 고졸 신인들 - 홍현우,조필현

90 시즌에 입단한 고졸 신인들 중 해태의 홍현우(광주상고 졸)와 LG의 조필현(서울고 졸)은 각각 소속팀의 김응룡 감독과 백인천 감독의 편애에 가까울 정도로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었다.

타자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두 감독은 각각 홍현우와 조필현을 팀내 차세대 4번타자로 키우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입단 첫해에 그들은 프로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게 되고 그 후 양선수는 대조된 길을 가게 되는데 홍현우는 91시즌 부터 출장 경기수가 늘어나더니 92 시즌 부터는 팀내 김성한,한대화,김종모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붙박이 4번타자로 맹활약 하지만 조필현은 끝내 꽃망울을 피우지 못한 채 소리없이 프로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5.결 산

90 시즌은 89시즌에 이어 투,타에 걸쳐 우수한 신인들이 대거 입단하면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는데 신생구단 LG 트윈스의 돌풍과 더불어 사상 첫 시즌 관중 3백만 돌파에 한 몫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 입단한 이들중 김동수(현 삼성),박동희(현 삼성),김경기(현 SK),이호성(해태) 등은 어느덧 팀내에서 고참 선수로서 후배 선수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특히 김동수와 홍현우(현 LG)는 새로이 시행된 FA제도의 수혜자로서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그들의 가치를 다시한번 인정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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