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도산법 왜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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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도산 관련법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여러차례 제기됐다. 절차가 복잡하고 용어도 어려워 구조조정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용어부터 문제가 있다. 현행 회사정리법은 기업의 재활을 돕는 절차인데도 '정리' 라는 표현이 자칫 '망해가는 회사' 라는 부정적 인상을 주기 때문에 '회사재건' '회사갱생' 등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복잡한 도산법 이외에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채권단의 기업 퇴출 조치, 은행관리 등 비슷한 기업 퇴출.회생 플랜이 남발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회생비용 너무 비싸〓우리나라 도산법이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지는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회생에 지출하는 비용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유행한 화의(和議)제도. 법정관리와 달리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당시 중견기업들이 화의신청 준비를 위해 로펌(법률회사).외국계 컨설팅 회사 등에 지불한 돈이 보통 수억원대를 웃돌았다.

J사 등 일부 대기업은 몇달 컨설팅 대가로 3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기도 했다.

이들 기업 중 대부분은 경영권 유지도 제대로 못하고 문을 닫거나 제3자에 인수됐다.

그동안 원리금 상환 유예 등 혜택이 더 많은 법정관리 쪽으로 전환을 모색했지만 현행법상 화의 도중에 법정관리로 전환이 불허되고 곧바로 파산절차에 들어가야 해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 왜 통합해야 하나〓김재형 서울대 교수는 "통합 도산법이 제정되면 파산 징후를 느낀 기업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신속히 법적 조치를 할 수 있고, 법원.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선택 폭도 커져 그때 그때 가장 적절한 절차를 유연하게 취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도산법을 하나로 통일하되 금융기관 등 채권자 수가 적은 중소기업은 거래은행과 해결하면 되는 화의 절차를, 채권단이 큰 대기업은 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 절차를 많이 준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金교수의 주장이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은 이같은 통합 도산법 체계를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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