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식 유머, 칸에서도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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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다른 나라에서’ 공식 시사회에 앞서 홍상수 감독(왼쪽에서 두번째)과 문소리(왼쪽), 이자벨 위페르(가운데), 유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윤여정(오른쪽) 등 배우들이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칸 신화= 연합뉴스]

통했다!

 제 65회 칸 국제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1일 오후(현지시각) 공식 선보인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감상이다. 영화는 감독 특유의 섬세한 반복과 변주가 돋보이는, 홍상수표 에피소드형 코믹 드라마다. 한국의 외진 어촌 모항을 무대로 세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프랑스 여인 안느(이자벨 위페르)를 축으로 펼쳐진다.

 영화 전문가이든, 초대 손님이든, 올해로 8번째 칸에 초청된 ‘아시아의 에릭 로메르’ 홍상수의 느슨하면서도 정교한 영화 세계에 익숙해진 게 틀림없었다. 번역의 한계에도 적잖은 대목에서 크고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 관객들 못지않게 영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여유로운 분위기는 두 편의 경쟁 부문 진출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와 ‘극장전’(2005)은 말할 것 없고, 2010년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안은 ‘하하하’ 때에도 목격할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드디어 홍상수 월드가 통하고 있구나’ 라는 감회가 밀려든 건 그래서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느슨함 속 정교함은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에서도 발견됐다. 프랑스 유명 감독, 한국 남자와 불륜 관계인 부잣집 유부녀, 한국 여자 때문에 이혼한 불행한 여인 등 각기 다른 세 캐릭터들처럼, 그 연기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결같이 귀엽고 아름다우면서도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함을 뿜어냈다. 수상 결과와 상관없이 그의 연기와 캐릭터는 2012 칸의 큰 화제로 머물 공산이 크다.

 영화 속 안느의 느낌은 공식 상영 전 오전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견은 화기애애함 그 자체였다. 홍 감독을 위시해 윤여정·유준상·문소리 세 배우들은 이자벨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했다.

 이자벨은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감독의 출연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며 감사와 만족감으로 화답했다. 또 “이자벨은 촬영 내내 삶은 달걀밖에 먹지 못했는데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아 적잖이 투덜대던 나로서는 큰 공부를 했다”는 윤여정의 소감에 “삶은 달걀 외에 배추도 먹었다”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영화 속 유머처럼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 주고받음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자벨은 홍 감독의 연출에 대해 “흔히들 즉흥 연기라고 하지만 아니다. 당일 오전에 대본을 넘겨주지만 연기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게 한다”고 말해 전문가다운 안목을 드러냈다.

 하지만 영화 저널리스트 및 평론가들의 평가는 평균 내지 평균 이하에 그쳤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경우 10인 평가단 중 8인이 평점을 줬는데 2점(4점 만점)에 그쳤다. 르 필름 프랑세 15인 평가단 중 평점을 준 11인의 종합 평점은 1.4점이었다. 유력 일간지 피가로는 지금까지 공개된 12편 중 9위로 평가했다. 별 세 개를 주며 “프랑스 뉴 웨이브의 잔향이 이 귀엽고 따뜻한 심성의 낭만적 영화에 흐른다” 는 스크린지 기자의 호평을 무색하게 하면서 말이다. 홍상수의 세 번째 경쟁부문 나들이는 난니 모레티를 수장으로 한 심사위원 9인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줬을까.

칸=전찬일(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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