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김세영 도박만화 〈타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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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말 우리 사회에는 '한탕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주식.경마.복권 열풍에다 정선 카지노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1년 후, 3년 후, 10년 후를 가늠할 수 없을 때 한탕의 유혹은 그만큼 커진다.

요즘 30대 직장인들 사이에 허영만.김세영의 도박만화 '타짜' (도서출판 채널)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지 모르겠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꾼' 들의 한결같은 다짐은 "기술을 익혀 크게 한판 해치운뒤 미련없이 판을 떠나자" 는 것이다. 어쩐지 초보 주식투자자의 초발심과 비슷하지 않은가. '타짜' 란 노름판에서 속임수를 잘 부리는 사람을 뜻한다.

주인공 곤은 누나가 어렵게 번 50만환을 '섰다' 판에서 탕진한 뒤 만회를 위해 '타짜' 의 길로 들어선다. 갓 출가한 동자승처럼 물을 긷고 밥을 짓고 마당을 쓰는 일부터 시작해 화투를 속이기 쉽게 깎아 다듬고 특정 패를 표시하는 기술까지, 피나는 '수련' 을 거친다.

'나홀로 타짜' 는 없다. '호구' (어수룩하게 생겨 돈 잃을 것 같은 사람)를 물색해 판을 엮어주는 전주(錢主)가 있어야 하고 '타짜' 를 도와주는 파트너도 챙겨야 한다. 만에 하나 돈을 잃은 사람이 속임수를 알아채고 대들 경우에 대비, '다찌' 라는 보디가드도 대기한다.

이쯤 되면 화투판도 하나의 '작품' 이다. 작은 담요 위에 욕망.갈등.배신 등이 펼쳐진다. 그림을 그린 허영만씨는 그간 경마.골프.자동차 경주 등 누구보다 다양한 소재를 발굴해왔다. 도박만화도 처음이 아니다.

1989년엔 도신(賭神)들의 세계를 그린 '48+1' 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와 스토리를 맡은 김세영씨는 '타짜' 취재를 위해 지난 99년 여름부터 '타짜' 를 여러 명 만났다.

허씨는 "이들이 속임수를 자랑삼아 다 보여주면서도 정작 판을 어떻게 짜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 며 "취재를 하다 보니 숫자에 밝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타짜' 로 타고나는 것 같더라" 고 말했다.

'타짜' 를 만난 자리에서 패를 돌리는 손놀림 등을 일일이 스케치하는 등 탄탄한 취재로 확보한 리얼리티가 '타짜' 의 재미다.

현재 9권까지 나왔으며 3부부터는 종목을 바꿔 트럼프 도박을 보여줄 계획. 정작 두 작가의 화투 실력은 "명절 때 고스톱이나 치는 정도" 다.

NOTE:일본 도박만화의 수작인 '도박묵시록 카이지' (후쿠모토 노부유키)와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선 패배자들이 배에 승선, 가위바위보 카드로 생사를 가리는 내용. 경우의 수가 단 3가지뿐인 가위바위보가 '죽음' 이라는 한계상황에서 무시무시한 변수로 바뀐다. 극한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관찰하는 것이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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