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구단-선수협 相生의 길

중앙일보

입력

프로야구 원로 모임인 일구회 회원들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섭다고 한다.

보는 사람들마다 선수협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이냐고 묻기 때문이다.

악화일로의 선수협 문제가 어떻게 귀결될 지 이들은 알 수 없다. 어떤 방향으로 자리매김해야하는지 명확한 주장을 펴기도 어렵다.

선수들 편을 들자니 해마다 눈덩이 같은 적자로 신음하는 구단측의 입장이 딱하고 구단측 손을 들어주자니 선수들로부터 사이비 선배로 치부당할까 두렵다.

그래서 이들은 양측이 대화를 하라는 양비론을 펴거나 가급적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사실 '맞아죽을 각오로' 견해를 피력하는 야구인들도 있다. 전 빙그레 감독 김영덕씨는 선수협이 사단법인화해야 한다고 선수들의 의견에 동조, 선수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또 야구해설가로 활동하던 이호헌씨는 선수협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일구회 회원 중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이 있다. 백인천 감독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백감독은 "일본도 프로야구 출범 50년 후인 1985년 선수노조를 만들었다. 우리는 너무 빠르다.
특히 각 구단은 일년에 50억~1백억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여기에 노조의 전 단계인 사단법인을 만든다는 것은 구단의 사업 의욕을 꺾는 일이다. 한꺼번에 다 얻으려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 라고 충고한다.

대부분의 야구 선배들은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는 현재의 규약을 개정해야 한다고 동의한다. 또 2군선수들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선수들을 위한 복지방안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수협의 사단법인화에 대해서는 아직은 때가 아니지 않으냐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특히 전략적으로도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프로야구의 인기나 위치가 예전보다 많이 축소돼 있고 만년 적자인 각 구단의 입장도 모기업의 구조조정 분위기로 크게 위축돼 있는 상태다.

두산구단 강건구 사장은 "예전에는 구단 예산을 지원하던 계열사가 10여개였다. 최근 구조조정으로 반으로 줄어 지원하는 쪽의 부담이 커졌다. 이에 따라 각사 사장들이 노골적으로 야구단 해체 검토를 권유해 오기도 한다" 고 말한다.

선수협 사태를 이해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선수들의 모임을 막으려 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다간 진짜 야구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주장만을 선택한다면 선수들이나 구단 모두에게 결코 득이 될 수 없다. 양측이 모두 이길 수 있는 전략은 대화를 통해 선수협을 공식 발족시키고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야구규약 개정과 선수복지규정 개정 작업에 선수대표를 참석시키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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