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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선물과 뇌물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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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

스승의 날이 지났다. 지난해 아이가 입학했을 때 학교에선 공문을 보냈었다. “스승의 날 선물과 촌지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반가웠다. 선물을 할지 말지, 하면 뭘 해야 할지 당최 머리가 아프던 차였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 옆반에선 아예 담임교사가 알림장에 “꽃다발과 선물을 절대 보내지 말라”고 미리 못을 박았다. 홀가분한 한편으론 씁쓸했다. 마치 ‘스승의 날 경계경보’라도 발령된 듯했다. 어제오늘의 얘긴 아니지만 스승의 날이 교사와 학부모 그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은 날이 돼버린 것 같았다.

 스승의 날을 전후해 트위터엔 유년 시절 얘기가 많았다. 지금까지 칭송받는 참스승도 있었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내게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초등 4학년 스승의 날이었다. 그날 하필이면 준비물인 리코더를 가져가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나를 포함해 준비물을 챙기지 않은 아이들의 손바닥을 한 대씩 때린 후 아침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쪽에 세워놓았다. 하루 종일 벌 서려니 힘도 들었고 준비물 하나 빼먹은 게 이렇게까지 벌 받을 일인가 싶어 울분도 생겼다. 하교를 위해 가방을 챙기는데 엄마가 스승의 날 선물로 전날 넣어둔 담배 한 보루를 발견했다. 담임교사에게 담배를 건넸다. 순식간에 그의 퉁명스러운 표정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진작 얘길 하지….”

 선물을 미리 줬으면 벌의 내용이나 수위가 달라졌으리라는 암시였을까. 그땐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날로 그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이건 아니지 싶던 반감은 지금도 선명하다. 극소수 교사에 한한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런 웃지 못할 경험이 술자리에서 흔한 안주거리인 것도 현실이다. 문제는 이 기억이 DNA에 새겨진 것처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어렸을 때 선물·촌지와 관련해 불이익을 당했던 경험, 그것이 일그러져 학부모가 된 지금 선물로 하는 ‘의무방어전’의 무의식적 배경이 됐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한 교육업체가 며칠 전 학부모 6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부모 10명 중 7명이 “부담스러운데도 선물을 준비한다”고 답했다. 그런 이유 중 내 아이만 관심받지 못할까 봐, 선물하는 게 관례여서, 친구들에게 내 아이 기죽지 않게 하려고 등이 55.8%였다.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42.5%)라는 사람보다 어쩔 수 없어서 혹은 이기심에서 한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스승의 날이 존재하는 이유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그 마음은 무슨 날이 있다고 해서 더 생기고, 없다고 덜 생기는 성질의 것은 아닐 거다. 학부모가 마지못해 챙기는 선물, 아무리 고가에 명품이라도 교사들로선 달가울 리 없다. 하나 더. 스승의 날이 새 학급에 배정되고 불과 두 달 만인 것도 공교롭다. 감사하는 뜻의 ‘선물’보다 내 아이 잘 봐달라는 ‘뇌물’ 성격이 더 강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