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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교수들이 도쿄대를 떠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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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도쿄대에서 계속되는 유명 교수 유출(流出).” 5일자 아사히(朝日)신문(석간)의 기사 제목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지성과 권위의 상징인 ‘도쿄대학 교수’의 타이틀을… 버리고 학교를 떠나는 교수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보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서울대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남의 일같이 보이지 않는다. 로스쿨 도입과 법인화 등 도쿄대의 개혁 전철을 뒤따라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대에서도 교수들의 ‘유출’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대는 일본 7대 국립대 가운데서도 가장 대우가 좋은 대학이다. 교수 평균 급여가 1165만7000엔(약 1억6000만원)으로 경쟁관계의 교토대나 도호쿠대보다 10%가량 많다. 그리고 대학 전체 예산도 2010년에 우리 돈 약 3조원으로 여타 국립대보다 월등히 많다. 왜 이렇게 높은 급여와 예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교수들이 도쿄대를 떠날까.

 도쿄대를 뒤로한 교수들의 변(辯)은 한결같다. “그동안 도쿄대가 지녔던 빛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해 3월 방송대로 자리를 옮긴 미쿠리아 교수의 말이 흥미롭다. 아사히신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학문, 꿈이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낭비나 여유가 필요한 법. 옛날 도쿄대는 이런 것을 중시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몰아붙이기만 해서 이런 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법인화와 같은 대학개혁 작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돈을 끌어오는 사람이 우대되고, 당장 성과가 나오는 연구가 급증하여 시간을 두고 성과를 내는 연구가 어려워지는 환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 회의가 많아지고 잡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역시 금년 3월 대학을 떠난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자 마쓰우라 교수도 비슷한 생각이다. “교수들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어 교실에서 학생들과 깊이 있는 지적이고,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도쿄대를 떠나는 교수들의 행렬은 계속될 것”이라는 그의 경고를 아사히신문은 전하고 있다.

 도쿄대와 비슷한 지적 위상과 권위로 ‘학문의 본산’을 자처하는 서울대의 경우는 어떨까. 서울대의 연간 예산은 연구비를 합쳐 도쿄대의 절반인 약 1조5000억원. 정교수들의 평균 연봉은 도쿄대의 절반 수준인 8500만원 정도로 국내 유수의 국립대나 사립대보다 낮은 편이다. 게다가 서울대 총장의 연봉은 1억1000만원으로 KAIST나 울산과기대 총장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이루어진 법인화는 대학운영에 기업적 경영감각을 요구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예산 확보를 위해 총장이 앞에서 뛰고 교수들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연 시장과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스타 교수의 영입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밖에서 돈을 끌어오는 교수나 학문분야는 우대되고 그러지 못한 기초학문 분야는 고사(枯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터부시되어 왔던 상아탑의 시장화·정치화 현상은 이제 서울대의 일상적인 단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교수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 뛰어드는 폴리페서들이 적지 않았고, 연말 대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권이 이공계 유명 교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학장이 우려스럽게 말했다. “서울대에 ‘안철수’가 왜 이리 많아졌냐”는 것이다. ‘학문의 본산’이 ‘정치의 본산’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문과 권력에 대한 지식인들의 이중성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학문의 자유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돈과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쿄대를 사직한 교수들의 모습이 우리에겐 경외의 대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대의 경우는 어떤가. 이미 유명 교수들이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버리고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발을 담그려 하고 있지 않는가. 특히 우려되는 일은 이공계에 이런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배 언론인이 말했다. “이러다 정말 ‘유명’ 교수들이 서울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그의 말이 틀렸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