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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역사스페셜 '고선지' 고구려 유민 그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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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2백여 년전 패망한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 중국 당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선지(高仙芝). 그는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서역을 통치한 희대의 맹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구려를 위해 싸운 장수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국내에서는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중국의 문헌은 그를 '高仙芝 高麗人也'(고선지는 고구려인이다)라고 적고 있다. 왜일까.

KBS1 역사스페셜팀이 신년특집 2부작으로 마련한 다큐멘터리 '고선지'(6, 7일 밤 8시)는 고선지의 삶과 행로를 고구려 유민사의 관점에서 짚으면서 이같은 궁금증을 풀어준다.

1부 '서역으로 간 고구려인'은 평양성이 당나라에 함락된 이후 중국으로 강제 이주 당했던 20만 고구려 유민 속에서 고선지의 흔적을 찾아낸다.

고선지 가문이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중국 서부 간쑤성(甘肅省)의 우웨이(武威)라는 도시다.

사막에 길게 난 오아시스를 끼고 발달한 이곳은 중국에서 서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다.

이는 훗날 고선지가 패배자의 아들에서 실크로드와 서역을 장악하는 안시(安西)도호부의 절도사에 오르게 된 배경을 말해주는 지리적 조건이었다.

2부 '파미르를 넘어 세계사 속으로' 는 당시의 국제 관계 속에서 고선지의 전투가 갖는 의미를 다룬다.

군사 1만명을 이끌고 파미르 고원과 세계 제2의 고봉인 K2를 넘는 파키스탄 북부 원정으로 고선지는 후대의 역사가로부터 나폴레옹과 한니발에 버금가는 장수로 자리매김된다.

이 원정의 승리로 고선지는 아랍과 중앙아시아 70여개 국을 모두 당나라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그러나 고선지의 삶은 결국 화려하지 못했다. 역사속 이민족의 운명이 그러하듯 평생을 당나라에 바친 그도 비열한 모함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장영주 PD는 "고선지가 고구려를 위해 싸운 사람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고민을 했다" 면서 "그러나 그의 발자취는 중국 역사가 아니라 동과 서의 문명 충돌이라는 세계사 속에 남아 있기에 다뤄볼 가치가 충분하다" 고 설명한다.

그래서 취재팀은 세계사를 뒤흔든 한민족의 후예의 자취를 찾기 위해 50여일동안 중국.파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을 돌며 황량한 사막과 해발 5천m가 넘는 고산지대를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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