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안받은 건 좋은 게임 개발하라는 뜻이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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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씨는 아마게돈 애니메이션 제작에 손수 나섰던 것과는 달리 게임 쪽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의 실패가 ‘만화’의 마인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는 뼈아픈 반성에서 나온 말이다.

또 다시 ‘최후의 결전’. 만화가 이현세씨(46)는 다시 한 번 ‘아마게돈’을 전쟁터로 내보낸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애니메이션化 했으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 아마게돈은 4년이 지난 2천년의 끝자락에 게임으로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계약금도 받지 않고 별도 계약도 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패기와 열정을 보고 작품을 줬죠.”

3년 전 밉스소프트 쪽에서 아마게돈을 게임으로 만들겠다고 제안했을 때, 이현세씨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게임 산업이 지금처럼 장밋빛 조명을 받던 때가 아니었지만, 젊은 사람들의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게돈 애니메이션 제작에 손수 나섰던 것과는 달리 게임 쪽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소설이 되든 영화가 되든 아니면 게임이 되든 완전히 재창조하는 작업이죠. 게임에는 만화와는 다른 문법이 있습니다. 그 문법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의 실패가 ‘만화’의 마인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는 뼈아픈 반성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원작의 부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 번의 큰 실패 뒤, 이현세 원작 ‘아마게돈’이라는 꼬리표를 단 물건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 두려울 수도 있을 텐데….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은 정말 완전히 실패였죠. 또 실패할까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요. 무서워해서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라며 초탈한 모습이다.

이현세씨에게는 지금도 만화를 게임으로 만들자는 제의가 심심찮게 들어온다. ‘천국의 신화’ ‘남벌’ 등 스케일이 크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의 만화가 게임으로 만들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제안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게임 하나 제작하는 데 2∼3년은 족히 걸립니다. 그런데 웬만한 벤처들은 그 기간이면 몇 번을 망했다 흥했다 하죠. 믿고 작품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젊은 열기’ 하나를 믿고 선뜻 게임화를 허락했던 일이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힘과 돈을 빌려 성공을 낚으려는 벤처들을 그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계약금을 받지 않고, 그 돈으로 개발에 힘쓰라는 얘기는 이상일 뿐입니다. 공짜로 얻은 것에 대해서는 목숨 걸고 하지 않게 되는 모양이더라구요.”

이현세씨의 벤처 비판은 날카롭다. “지금 벤처가 바람을 맞고 있죠. 그건 대규모 금융 사기 사건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용’을 지킬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같이 게임으로 크게 성공해 원작의 이름을 높여준 예도 있지만 인터넷 기업과 만화계의 만남은 씁쓸함이 많았다. 우선 회원을 많이 모으자, 사이트 규모 먼저 키우자는 말로 만화가들을 설득해 만화를 공급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요즘 만화 돈내고 보는 사람도 있나?’ ‘만화=무료’라는 인식만 남았다. 하루 아침에 연락도 없이 회사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작가들도 한 때 회원 확보가 돈이라는 생각을 가졌었죠.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만화 원작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게임화 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그는 누구보다 밉스소프트의 아마게돈이 성공하길 바란다. 내년에 다시 한번 애니메이션에 도전장을 내밀 결심을 굳혔으니, 희망찬 신호탄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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