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르랠리] 내가 겪은 파리-다카르 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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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96·97년 파리-다카르 랠리를 2년 연속 취재했다. 96년 대회는 특히 한국 신문기자로는 처음 랠리 전 구간을 동행 취재한다는 점에서 자긍심과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겨울에도 한낮 온도가 섭씨 40도를 오르내린다. 300km 이상을 달려도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든 황무지,바다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언덕들,크고 작은 돌맹이와 바위들로만 이루어진 돌의 세상,가끔씩 나타나는 오아시스와 풀도 없는 산언덕….

출전자들은 이런 지역을 가로지르며 하루에 적게는 400∼500km에서 많게는 1,000km까지 달려야 한다.곳곳에 사고의 위험이 도사린 사막과 황무지를 보름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는 것은 실로 모험적이다.

96년 출전한 국내 드라이버들은 이 대회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잘 모른 채 도전했다.T2급에 출전한 김한봉 선수는 대회가 끝난 뒤 몸무게가 9kg이나 빠졌다.경기를 시작한 지 3일째부터 수시로 경기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는 고백에서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대회에 참여한 인원은 줄잡아 2천여명.경주차와 지원트럭 등 출전차를 타고 달리는 선수들이 600여명,대회 본부 진행요원이 500여명,각국 보도진이 400여명,의료 숙식 등 행정요원이 200여명에 이른다.자동차만 600여대가 움직이고 비행기도 20여대가 매일 운행한다.

지뢰를 밟아 트럭이 전복돼 출전선수가 숨지고 100m가 넘는 모래언덕에서 차가 굴러 떨어져 다치기도 한다.

그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건 물론 위험하기까지 한 사막을 왜 달리는 것일까.취재기간 내내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대회가 끝난 뒤 골인지점에 도착한 선수들의 희열에 찬 얼굴에서 조금이나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그러나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출전선수 뿐 아니라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는 사람들까지 뭔가 흥분에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답은 대회가 끝난 뒤 몇개월 후에야 알 수 있었다.험하고 뜨거운 사막과 그 위를 달리는 괴력의 경주차들,매일매일 눈 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과 불굴의 의지,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 사막….이런 장면들이 불현듯 머릿 속을 비집고 되살아났다.그리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마력으로 그곳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기계 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그것으로 원시 자체인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그것은 마치 하나의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떨쳐버리기 어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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