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저소득 가정 15쌍 “새 출발 하게 돼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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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산 청소년수련관 대 강당에서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 15쌍이 결혼 행진곡에 맞춰 입장하고 있다. [사진 천안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다문화가정과 저소득가정 15쌍이 합동 결혼식을 올렸다. 동천안청년회의소의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2일 오후 3시 태조산 청소년수련관 대 강당에서 성무용 시장 등 내빈과 가족, 축하객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예복과 신부화장은 지역 내 기관과 단체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성무용 천안시장은 이날 축사에서 “15쌍의 부부모두 이번 결혼식을 계기로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을 새기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영민 기자

“둘째 태어나면 …” 아내와 약속 지켜

베트남 출신 아내와 함께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승철(36·가명)씨는 아내와 함께 산지 5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벼 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 부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미뤄왔다. 외국인 아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들 이주여성과 결혼한 자체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부부 역시 사랑했기 때문에 가정을 꾸린 겁니다. 사랑하는데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혼식도 못 올린 채 혼인신고만 하고 지내왔지만 그들의 신혼생활은 남부럽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는 미뤄뒀던 결혼식도 할 예정이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집안 형편도 어느 정도 좋아졌었거든요. 둘째가 돌이 되면 친정 식구들까지 불러 결혼식도 하고 신혼여행도 가려고 했었죠.”

하지만 둘째 아이가 큰 병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면서 결혼식은 또 한번 기약 없이 미뤄졌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힘들어하는 둘째 아이를 두고 결혼식을 올린 순 없어서였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안타까웠어요. 수술이 잘 되고 이젠 건강해 졌으니 아내와 했던 약속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 합동결혼식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김씨는 이번 결혼식을 마치고 가족 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필리핀에서 시집 와 한국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친언니의 소개로 1년 만에 결혼식을 한 강승규(33·가명)씨. 그 역시 이번 합동결혼식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비자문제 때문에 신부측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요. 하지만 이렇게 결혼식을 올리니 감회가 새롭네요. 주최측에 감사 드리고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늘었으면 좋겠어요. 가정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아내에게는 더욱 당당한 남편이 되고 태어날 아기에게는 존경 받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아내 조안은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몰라 걱정이 앞서지만 남편을 믿고 의지하면서 열심히 살겠다. 합동결혼식을 올려줘 감사하다”라며 어눌하지만 감격에 찬 어조로 소감을 밝혔다.

차별과 무관심 힘들어하는 가정 많아

“지역에는 사정상 결혼식을 제대로 올리고 살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아요. 저소득층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에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동천안청년회의소 이승제(37)회장은 이번 합동결혼식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행사는 올해로 7회째를 맞고 있으며 총 100여 쌍의 부부들의 결혼식을 성사시켰다. 이회장은 “합동결혼식을 개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은 있지만 매년 조금씩 행사의 규모를 키울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5000만원 정도. 천안시에서 1000여 만원을 지원 받고 동천안청년회의소 회원들과 지역 봉사단체의 사비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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