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중국인 신선한 먹거리 추구

중앙일보

입력

중국 베이징(北京)
의 중심가인 충원먼(崇文門)
에 자리잡은 충원먼 식료품 시장. 이곳은 과거 명성을 날렸던 베이징의 3대 국영 식료품 시장들 중 아직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국영 식료품 시장이다. 국영 식료품 시장의 장점은 판매되는 식품이 다른 여느 시장보다 깨끗하고 품질이 보장돼 일반 라오바이싱(老百姓)
들이 믿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엔 특별히 내세울 게 없었는데 최근 이곳으로 향하는 베이징 주부들의 발길이 유난히 잦아지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특별 식품이라도 나온 것일까.

바로 그렇다. 이 충원먼 식료품 시장에 지난 11월 초부터 특별 상품이 출시됐다. 이름은 ‘생일 달걀’(生日 鷄蛋)
.이게 무슨 말일까. 생일 달걀이란 닭이 언제 그 달걀을 낳았는지 출생 날짜를 적은 달걀을 말한다. 충원먼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이 생일 달걀은 그 껍질 위에다 가지런히 숫자를 적고 있다. 모두 9개의 숫자다. 앞의 4자리 숫자는 출생 월일, 뒤의 5자리 숫자는 랴오닝(遼寧)
省의 ‘랴오젠’(遼健)
회사에서 생산됐음을 표시하는 일련번호를 말한다.

지난 10월 말 중국 최고의 상업 도시 상하이(上海)
에 중국 최초로 출생일을 기재한 달걀이 등장하기 무섭게 베이징에도 생일 달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생일 달걀의 가격은 보통이 아니다. 출생일을 적지 않은 기존의 일반 달걀이 5백g에 2위안 하는데 반해 이 생일 달걀은 5위안. 보통 달걀보다 2백50% 비싸다. 1위안에 벌벌 떠는 주부들 입장에선 엄청나게 비싼 달걀인 것이다. 그럼에도 충원먼 식료품 시장으로 몰리는 베이징 주부들의 인파는 그치지 않는다. 좋아서 입이 딱 벌어진 랴오젠 측에서는 이 생일 달걀이 보통 달걀에 비해 칼슘 함유량이 훨씬 많다며 선전에 열을 올린다.

아직 정확히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랴오젠의 광고는 주부들의 말을 빌려 이집 저집으로 전파된다. 그러나 주부들은 이같은 랴오젠의 선전에 넘어가 생일 달걀을 찾는 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달걀의 신선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짜가 적혀 있어 태어난 시점을 알 수 있기에 신선한 것을 고를 수 있다. 중국인들은 믿고 살 수 있는 달걀이라는 뜻에서 이 생일 달걀을 ‘팡신단’(放心蛋)
이라고도 부른다. 식품의 경우 신선도를 제일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전통적 습관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 전통적 식습관을 되살리고 있는 원동력은 바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적 발전이다. 한마디로 물건을 선택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사실 음식의 신선도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은 각별하다. 한 예를 들자. 1949년 겨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 마오쩌둥(毛澤東)
은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았다. 毛와 스탈린의 회담이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는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毛의 전담 요리사와 크렘린의 주방장 간에도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毛의 요리사가 요리를 거부한 것이다. 통역이 달려가 자초지종을 알아 보니 크렘린에서 제공한 생선이 살아 있지 않고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생선이 죽어 있기에 의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신선한 활어(活魚)
가 아니어서 음식의 제맛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毛의 요리사가 요리를 보이콧하는 시위를 펼쳤던 것이다. 사태는 결국 크렘린이 오직 살아 있는 생선만을 공급하기로 하는데서 일단락됐다.

이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듯이 신선함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은 이제는 식탁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베이징 주부들의 쌀 구입 행태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먹을 것이 언제나 부족했고, 또 언제 발생할지 모를 대기근 등에 대비해 할 수만 있다면 곡식을 많이 사들여 저장하는 게 여느 가정들의 일반적 모습이었다. 한번에 1백근(50kg)
씩 사들이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베이징 주부들은 이제는 봉지 쌀을 산다. 베이징의 슈퍼마켓엔 쌀과 보리·현미·붉은 쌀 등 중국 각지의 특산임을 자랑하는 수십 가지의 곡식이 진열돼 있다. 주부들은 마치 각양각색의 유리병에서 사탕을 고르는 아이들처럼 이런저런 용기 안에 진열돼 있는 곡식을 1근(5백g)
씩 구매한다. 곡물의 공급이 안정되다보니 기근이란 단어를 잊은 채 이젠 취향에 따라 그날그날 먹고 싶은 대로 조금씩 사가는 것이다.

랴오닝성·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省 등 중국 동북지방의 식탁에 빠짐없이 오르던 배추도 이젠 더 이상 고정 메뉴가 아니라고 중국의 공인일보(工人日報)
는 전한다. 그 자리를 해물 등 꽤 값 나가는 식품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상에 큰 걱정이 없는 소강(小康)
수준에 도달한 중국인들이 이젠 ‘녹색의, 천연의, 영양의, 건강한’ 4대 먹거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유상철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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