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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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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남윤호
정치부장

뒷골목 막싸움꾼도 일단 링 위에 오르면 룰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선수 자격이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 단순한 상식을 무시했다. 그들이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서 저지른 부정은 정치혐오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좌(左)나 우(右)나 썩어 문드러지긴 마찬가지다 하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거다.

 그런데도 당권파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되레 보수언론에 먹잇감을 던져줬다느니, 당을 개판으로 만들었다느니 하며 역공에 나섰다. 일부 부실한 선거관리가 있었다 해도 결과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고도 한다. 수퍼에서 과자 한 봉지 훔쳤다고 그 가게 망하진 않으니 죄가 아니라는 식이다. 부정 자체에 대한 반성은 찾을 수가 없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룰을 깡그리 무시한 셈이다. 남의 룰에 따르는 순간 거세당한다는 피해의식과 강박관념 탓일까. 그런 식으로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는 위조여권을 갖고 국회에 밀항하려는 거나 같다.

 그들은 자신을 선(善)으로, 상대를 악(惡)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도, 목적 자체를 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타협과 절충의 연속이다. 상대를 악마로 본다면 함께 정치를 할 수가 없다. 끝장을 봐야 하는 섬멸전이 있을 뿐이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가 성전에 임하는 종교집단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결코 보수와 진보의 차원이 아니다.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다. 10.3%의 정당득표율을 얻은 제3당에서 벌어진 건 ‘진보의 실패’가 아니라 ‘상식의 실패’다.

 길게 보면 이 역시 어두운 과거의 유산 아닌가 싶다.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절이 만들어낸 변종이란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는 우리 내부의 문제이며,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정화능력을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으로 진보의 가치가 빛을 잃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진보 노선에 대한 유권자의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정당학회가 국회의원·유권자의 이념성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4년 전에 비해 확연한 좌클릭이 확인된다. 0~11 사이에서 숫자가 작을수록 진보를 의미하는 이념지수가 18대 총선 때의 유권자들에선 5.51로 나왔는데, 이번엔 5.18이었다. 또 이번 총선을 앞두고선 자신을 진보성향이라고 보는 국민이 35%에 달했다는 조사도 있다.

 이런 방향성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중산층과 서민의 살림살이는 계속 팍팍해져 왔다. 기업 저축률은 사상 최고치인 20%에 육박하는 반면, 가계 저축률은 2.7%로 떨어진 상태다. 대기업이 ‘어닝 서프라이즈’라며 빛나는 실적을 발표할 때, ‘그럼 나는 뭐냐’ 하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번듯한 샐러리맨조차 여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사회경제 구조에선 진보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의 정치지형에서 진보를 위한 문은 늘 열려 있다. 하지만 정작 진보세력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폐증 환자처럼 자신의 진영논리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진보의 외연을 스스로 좁히고 말았다. 땅은 괜찮은데, 씨가 부실하다고나 할까. 그러는 동안 상식과 원칙을 무시하는 집단에 권력을 쥐여줄 수 없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결국 진보의 최대의 적은 진보의 구태의연한 행동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주말 인터넷으로 중계된 통합진보당의 전국운영위원회를 봤을 거다. 거기엔 여러 얼굴들이 등장한다. 선거 부정을 태연히 부정하는 예쁜 얼굴, 폭로와 진상조사를 규탄하는 화난 얼굴, 왜 이 지경이 됐나 하는 허탈한 얼굴….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책임을 통감하며 온몸으로 진보의 가치를 지키려는 비장하고 진지한 얼굴 말이다. 바로 이게 통합진보당에 한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얼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