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러브스토리?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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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문을 연 시네큐브 극장은 정말 마음에 쏙 든다. 우선은 시내에서 가깝고 입구가 넓으며 근처에 버터구이 오징어를 굽는 노점상이 없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스크린과 쾌적한 의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를 보러온 사람은 불과 열 명 남짓이다. 왜? 그거야 뭐, 오해 때문이다. 오해? 무슨 오해?

이 영화는 오해로 점철되어 있다. 이름부터가 오해를 사게 생겼다. 우선은 순진한 관객으로부터 포르노가 아닐까, 라는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조금만 영악한 관객이라면 제목에 '포르노' 자 들어간 영화치고 야한 게 없다는 걸 잘 안다.

또, 베니스 영화제가 포르노 영화에 여우주연상을 안겼을 리가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포르노를 빙자한 예술영화라는 오해를 받는다. 정말 오던 관객도 돌려세울, 치명적 오해 아닌가.

그러니 좋은 영화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기자나 평론가 같은 고급 관객들은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오해의 늪에서 건져내자! 그래서 동원된 알리바이가 바로 '사랑' 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영화 포르노가 아닙니다. 그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나는 그것도 오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척 하면서 실은 오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사랑은 바람잡이?)

두 남녀의 증언은 영화의 시작부터 삐그덕거린다. 남자는 잡지를 통해 여자를 만났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여자는 인터넷을 이용했다고 말한다. 남자는 2, 3주에 한 번 만났었다고 회상하지만 여자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만나지 않았었나고 생각한다.

그 둘이 행했다는 '특별한 행위'는 영화 끝날 때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그 부분은 온전하게 관객들의 오해로 메꿔진다. 감독은 그 창조적인 오독을 위해 카메라를 호텔방 문 앞에 세워놓고 여간해서는 안으로 들여놓지를 않는다.

둘의 헤어짐도 아주 사소한 오해로 야기된다. 남자는 여자의 표정에서 거부의 신호를 읽었다고 생각하고 먼저 결별을 선언하고 여자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혹시 그 신호를 잘못 읽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남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었을 거예요. "

오, 그것마저도 치명적인 오해인 것을, 세상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개인의 오해에 대해 구구절절 해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남자는 몰랐다.

사랑도, 결혼도, 그들이 공유했을 지 모르는 미래도, 알고 보면 '오해'라는 이름의 연약한 지반 위에 건설되는 부실 건축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이 오해로 이루어져 있고 예술 또한 예외가 아닐 때, 문제는 오히려 아무런 오해를 생산하지 않는 예술에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이 영화관을 나서면서 든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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