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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슈] 대관(貸館) 사업에 힘쓰는 예술의전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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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예술의전당(왼쪽)과 카페 모차르트(오른쪽). 예술의전당 카페 사업수익은 매년 늘고 있지만 공연사업비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17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이하 전당)을 찾은 김영수(38)씨는 빈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세바퀴나 돌았다. 카페에선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김씨는 “콘서트홀에는 빈자리가 많았는데 카페에는 사람이 넘쳐 놀랐다”고 말했다. 일종의 주객전도다.

 공연진흥이 설립 목적인 전당에 대한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콘서트홀 등을 적극 빌려주며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공연 예산은 줄어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당의 3대 추진 목표 중 하나인 ‘명품기획’이 무색할 정도라는 것이다. 본지가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당의 14년치 재무 상태를 분석했다.

 ◆줄어드는 공연 투자=전당의 위기는 수치로 입증됐다. 조사 기간 동안 공연사업비가 꾸준히 감소했다. 2001년 42억5857만원이던 공연사업비는 지난해 34억5587만원으로 축소됐다. 공연사업비는 쉽게 말해 전당이 직접 기획하는 공연에 사용하는 돈이다. 전당은 이 예산으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동안 ‘말러 교향곡 1999~2002’ 시리즈를 기획해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 음악사에서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클래식 음악팬들로부터 ‘명품무대’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런 노력 덕(?)인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말러 교향곡’ 붐은 계속되고 있다. 2004년 매진 행렬을 기록한 뮤지컬 ‘맘마미아’와 연장 공연을 이어간 ‘렌트’도 전당이 주도해 만들어낸 공연이다. 2006년과 지난해 기획 공연을 비교하면 공연 숫자도 줄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내한 공연’ 등 대규모 기획은 찾아 보기 힘들어졌다. <표 참조>

 반면 콘서트홀 등을 빌려주면서 받는 대관(貸館) 수입은 꾸준히 늘었다. 2000년 36억8071만원을 기록한 대관수입은 지난해 87억8812만원을 기록해 2.3배 늘었다. <그래프 참조>

 수도권의 한 공공 예술기관 대표는 “2006년, 2008년에는 전당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추진해 호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교향악 축제, 11시 음악회 등 자체 기획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명품 공간’ 전당의 빛이 바란지 오래”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동혁 전당 사업본부장은 “최근 몇 년 새 뮤지컬·오페라를 자체 제작하지 않아 공연사업비가 감소했지만 국립오페라단 등 외부 단체들이 적극 활동하고 있어 대관 위주로 전환한 것뿐이다. 클래식 공연 기획은 줄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카페 수입=2003년 카페 사업을 시작한 전당은 2008년 문을 연 카페 벨리니를 비롯해 총 14곳의 카페·음식점 중 8곳을 직영하고 있다. 2003년 3억6983만원이던 카페 수입은 지난해 52억9653만원으로 14배 늘었다. 이런 이유로 ‘예술의전당인가, 커피의전당인가’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전당의 카페 선호 현상은 호주 오페라극장과 비교하면 쉽게 드러난다. 호주 오페라극장은 카페 ‘오페라’를 비롯해 총 6개의 카페 및 음식점을 두고 있지만 운영은 외부 업체에 맡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수입에서 카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호주 오페라 극장이 4%, 전당은 13%로 조사됐다.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해 11개 단체가 상주하는 미국 뉴욕 링컨 센터는 6개의 카페 및 음식점만을 두고 있다.

 ◆해결책은 없나=전당은 “카페 운영 및 대관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본부장은 “카페 및 대관 수입은 시설 노후화 등으로 인한 내부시설 개선 비용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도 적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당은 2008년, 2010년을 빼곤 최근 10년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 본부장은 “현재 60억원 수준인 정부 보조금을 100억원으로 늘려야 제대로 된 예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며 “내년에는 공연사업비 등을 늘리는 것을 검토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공연 관계자들은 전당 예산 운영 재정립을 주문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술단체 대표는 “전당은 무엇보다 설립 목적인 기획공연에 충실해야 한다. 대관 위주의 운영방식은 전당의 명성을 떨어뜨릴 뿐이다”고 주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 교수는 “전당이 3년 전 예술감독 직책을 없앤 것은 사실상 자기부정에 가깝다. ‘공연문화 1번지’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대형기획도 보여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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