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못 견디게 그리울 봄날 주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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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감성의 계절이다.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면서 옛 추억에 젖기도 한다. 봄은 아름답다. 봄날은 인생에서 가장 풋풋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신경학 전문의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자신의 ‘봄날’에서 기억이 멈춰버린 사람이 나온다. 그는 해군으로 복무했던 1945년 이후 수십 년의 기억이 지워졌다. 거울로 자신의 늙은 얼굴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마음만은 열아홉 살’이다. 기억상실의 일종인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걸린 남자다. 기억이 사라진 사람은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그 환자는 ‘날마다 새로운’ 정원 가꾸기에 집중력을 발휘한다. 최근 서울 강동구치매센터에서 만났던 할머니는 한지로 된 포도알을 하나하나 찢어 붙이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현재의 새로운 경험, 새로운 자극은 기억을 잃어버린 이들도 웃게 한다.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건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봄에는 춘곤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일상이나 업무에 의욕을 잃고 쉽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나중에 기억조차 나지 않을 어떤 일 때문에, 언젠가 못 견디게 그리울지 모를 오늘의 기억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봄날이 가고 있다. 주말, 야외에서 추억을 만들기 좋은 맑은 날씨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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