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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시달리는 자영업자들 피땀이 만든 살기 편한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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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밤중에 족발이 먹고 싶다고요. 어렵지 않아요. 전화 한 통이면 돼요. 새벽 두 시고, 세 시고 철가방을 실은 오토바이가 총알처럼 달려와요. 심야에 부부싸움 한탕 하고 나왔는데 갈 곳이 없다고요. 걱정하지 말아요. 찜질방에 가면 돼요. 밤에도 불을 밝힌 동네 술집에 가서 한잔 술로 속을 달래도 돼요. 밤 12시에 맥주가 떨어졌다고요. 문제 없어요.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면 돼요. 외국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아요. 세상에 이런 나라 없다는 걸. (돈만 있으면) 대한민국처럼 살기 편한 나라가 없어요. 이 편한 대한민국의 비밀? 그건 무한경쟁에 내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에요.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취업인구의 29%가 자영업자라고 해요. 식당이나 술집, 노래방, 이발소, 미용실, 모텔, 목욕탕, 부동산 중개업소 등 가족노동에 의존하는 구멍가게 수준의 ‘맘 앤 팝 비즈니스(mom-and-pop business)’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근로자 10명 중 3명꼴이란 소리예요. 미국은 100명 중 7명밖에 안 돼요. 특히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는 우리나라가 12.2개로 세계에서 제일 많아요. 미국은 1.8개에 불과해요. 어딜 가나 지천으로 깔린 게 음식점이다 보니 주인들마다 필사적인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하지만 음식점을 해서 올리는 월평균 순이익은 141만원밖에 안 된대요.

 팔팔한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난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을 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래서 너도나도 창업시장으로 몰려들고 있어요.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중 신설 법인 수가 1만9048개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대요. 84%가 자본금 1억원 미만의 소자본 창업이고, 창업자의 60%가 50대 이상이래요. 창업을 해도 성공 가능성은 극히 낮아요. 대박을 꿈꾸지만 대개 쪽박을 차요. 매년 100만 명이 창업하고, 80만 명이 폐업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퇴직금에 집까지 날리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살기 편한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이에요.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1955~63년생만 700만 명이에요. 기대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요. 영세 자영업자들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멋진 꿈이에요. 월급쟁이들의 로망이기도 해요. 하지만 경험과 준비 없이 사업에 성공하기는 정말 힘들어요. 틈새를 파고드는 ‘니치 전략’이 중요하다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소자본 창업과 폐업의 악순환은 개인 문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에요. 국가와 사회가 같이 고민하고 대책을 찾아야 할 심각한 문제예요. 자칫하면 살기 편한 대한민국의 폭탄이 될 수 있어요.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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