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만 앞세운 농어촌 빚 경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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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농어가의 빚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주 국회에서는 국민 1인당 10만원꼴의 세금이 동원되는 '농어업인 부채경감 특별조치법' 이 통과된다. 국민의 정부 들어 다섯번째이며, 1980년 이후부터 따지면 열다섯번째 대책이다.

이같은 농어가대책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면서 학계.농업전문가들의 비판도 커지고 있다. 농어민들의 소득을 늘려 줄 근본 대책 대신 돈으로 문제를 덮고 가는 일회성 대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정되는 특별법은 사상 두번째로, 여야 협의 과정에서 당초 정부안의 두배가 넘는 4조5천억원으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농민들의 소득(99년 말 현재 가구당 2천2백32만원)이 외환위기 이전인 95년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상환능력을 높일 보완대책이 없고,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지원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책 역시 미봉책에 불과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최양부 농식품유통연구회장은 "농민 개개인의 자산.소득정도.상환능력 등을 따져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 없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려 지원규모와 방법을 정해야 한다" 며 "이번같은 졸속 지원은 정치논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고 말했다.

농협 경남 S지점의 전무는 "그랜저를 타는 농민이나 끼니가 곤란한 농민이나 똑같이 자금을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충북대 성진근 교수는 "부채에 비해 소득과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농가를 심사해 회생 가능성이 있으면 기업의 워크아웃처럼 경영안정자금을 과감히 지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파산시켜 최저생계비와 보조금 등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 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측도 이번 조치와 관련, ▶대출금리가 저축금리보다 더 낮아지는데 따른 금융질서의 왜곡현상 ▶성실 채무자나 부채없는 농민에 대한 형평대책 ▶상환능력을 높이기 위한 소득증대방안 등의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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