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뇌사 아기 심장이 11개월 아기 가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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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연소 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한 건국대병원 서동만 교수가 새로운 심장을 받은 이모양을 살펴보고 있다. 이양은 지난 13일 뇌수막염으로 숨진 생후 4개월 된 남자아이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사진 건국대병원]

뇌수막염으로 숨진 생후 4개월 된 남자아이의 심장이 생후 11개월 된 여아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다. 남자 아이는 국내에서 이식에 사용된 심장 제공자 중 최연소로 기록됐다.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서동만 교수팀은 “지난 13일 생후 4개월 만에 뇌사에 빠진 남아의 심장을 11개월 된 이모양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26일 밝혔다. 수술엔 5시간이 걸렸으며 이양은 건강을 회복해 곧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질 예정이다.

 서 교수는 “정밀한 미세수술이 필요했던 데다 4개월 된 아기의 심장이 11개월 된 아기 몸에 적응해 정상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난제가 있었지만 잘 극복됐다”고 설명했다. 기증된 심장은 이식 대상인 이모양 심장의 30% 크기였다. 서 교수는 “크기가 작은 심장을 받은 이양이 서서히 적응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영업 비밀’(의료기술)”이라며 “장기기증에서 성(性) 차이는 수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양은 생후 100일 무렵까지는 건강했다. 그러나 이후 심한 설사 증상 등이 나타나 장염 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급격한 호흡 곤란 증세까지 생겼다. 검사 결과 원인 불명의 확장성 심근증으로 진단됐다.

 정상 아기의 심장 박출량(심장박동으로 송출되는 혈약량)에 비해 이양의 심장박출량은 15% 수준밖에 안 돼 생명이 위독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에서 투약 등 치료로 심장 박출량을 약간 끌어올리는 등 ‘급한 불’은 껐지만 심장 이식이 불가피한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식 받을 심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수술 결정까지는 쉽지 않았다. 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양의 어머니인 이모(26)씨는 고심 끝에 “아이가 건강하게 살려면 수술밖에는 길이 없다”며 이식 수술을 택했다. 이양과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생후 4개월 아이가 심장 이식을 기다리다가 ‘험한 과정을 걱정한’ 부모가 두 달 전에 중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이양의 어머니는 “수술 전엔 이유식 100㎜를 먹는 것도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던 아이가 지금은 200㎜ 이상도 먹고 있다”며 “아이 건강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40여 건의 어린이 심장 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또 생후 100일 된 영아에게 4세 뇌사 환자의 심장을 이식해 국내에서 가장 어린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한 기록(2008년)도 갖고 있다.

◆확장성 심근증=심장이 커지면서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 심장 기능 저하로 인해 활동할 때 피로· 쇠약감을 느끼게 된다. 병이 진행되면서 심부전 증상으로 호흡곤란이 생긴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50% 정도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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