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 테이프’ ‘지프(Jeep)차’처럼 특정 상품이 시장을 선도하고 장악하면서 브랜드명이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휴대전화 결제 시스템을 일컫는 말로 ‘빌투모바일’이라는 단어를 흔히 쓴다. 빌투모바일은 국내 기업 ㈜다날이 개발한 휴대전화 결제 시스템의 미국 내 상품명이다.
이 제품이 탄생한 건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다날에 개발자로 갓 입사한 당시 스물세 살 청년 류긍선(35·사진)이 입사 넉 달 만에 세계 최초로 내놓은 제품이었다. 그는 “신용카드처럼 지갑 속에 들어있는 모든 기능이 결국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오는 세상이 올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11년 만인 지난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벤처 풍토가 10년 새 바뀌었다, 야근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야근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이 망가진다”는 게 이유다.
그는 “가능한 일찍 퇴근해 이런저런 공부를 하는 편이 조직의 미래에 더 도움된다”고 설명한다.
개발과 경영의 차이에 대해서도 류 대표는 교과 과목에 빗대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는 “개발은 수학·과학과 비슷해 답이 딱 떨어진다. 그러나 경영은 안 되는 이유든, 잘 되는 이유든 해답을 찾기 어렵고 공식도 답도 모른 채 고민하고 판단하는 철학 과목 같다”고 말한다.
올들어 다날은 미국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달 초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휴대전화 불법 결제 방지 기술 등에 관한 특허를 받았다. 지난달에는 미국 카드시장의 25%를 차지하는 디스커버와 모바일 결제 마케팅 파트너 협약을 체결했다. 디스커버는 연 매출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결제 서비스 전문 회사다. 지난해엔 버라이즌·스프린트·AT&T·티모바일 등 미국의 4대 통신사와 결제중개사업을 맺은 유일한 글로벌 사업자가 됐다.
하지만 미국시장에 진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5년 류 대표는 빌투모바일을 들고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스프린트사의 연구소를 찾았다. 비행기·기차·자동차를 갈아타고 꼬박 하루를 걸려 찾아간 뒤 결제 방식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냉정했다.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3년 만에 전혀 다른 반응이 왔다. 스프린트 측은 “우리는 통신 인프라 사업 경험은 많지만 커머스 경험이 부족하다. 다날과 함께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휴대전화로 결제된 거래금액은 모두 2조5000억원. 이 가운데 1조원이 다날의 휴대전화 결제 시스템으로 거래됐다.
박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