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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반중 학업성취도 1위 비결은 ‘융합교육’과 ‘자유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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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중은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실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서울지역 중학교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대원국제중·영훈국제중을 제외하면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셈이다. 국어·영어·수학과목에서 보통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학생이 전교생의 97.4%에 달했다. 공립중이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낸 건 이 학교만의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융합인재교육(STEAM)’ ‘자유탐구 활동’이 대표적이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
사진=김진원 기자

대청중 1학년 학생들이 액체 상태의 초콜릿을 플라스틱 틀에 부어 새로운 모양을 만들고 있다.

과학실험한 뒤 느낀 점 글·만화·노래로 표현

지난 18일 오전 10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대청중 과학실. 1학년 과학수업이 한창이었다. 초콜릿을 활용해 물질의 상태 변화를 배우는 시간이다. “지금 초콜릿의 상태가 어떻죠?” 김동섭 교사가 시중에서 파는 초콜릿을 집어 들더니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체 상태요.” “처음부터 고체 상태였을까요? 모양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김 교사의 계속된 물음에 박지윤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열을 가해 녹이면 돼요.” 이후 학생들은 초콜릿을 잘게 부순 뒤 열을 가했다. “선생님, 초콜릿이 금방 녹았어요.” 김 교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초콜릿이 물처럼 녹았죠? 이것을 ‘액체상태’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이제 녹은 초콜릿을 틀에 부어 굳혀볼까요?” 학생들은 하트·별 모양의 플라스틱 틀에 녹은 초콜릿을 부어 굳히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재홍군

 이날 수업의 주제는 ‘물질의 세 가지 상태’다. 초콜릿의 상태 변화를 통해 고체·액체·기체 원리를 익힌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초콜릿은 고체 상태지만 열을 가하면 액체 상태로 변하고,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굳으면서 다시 고체 상태가 되는 물질의 성질을 이해하게 된다.

 실험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김 교사가 학생들에게 한 가지 주문을 더 했다. “초콜릿은 오늘 고체에서 액체가 됐다가 다시 고체 상태로 변했습니다. 여러분이 초콜릿이라고 가정하고 탐구보고서에 오늘 겪은 일을 실험한 내용과 연관시켜 글로 표현해보세요.” 고민하던 학생들은 탐구보고서 빈칸을 채워나갔다. 최예린양은 ‘처음에는 딱딱했지만 열을 만나면서 형체를 잃어갔다. 녹은 나(초콜릿)는 왕관 모양의 틀에 부어져 새롭게 태어났다’고 썼다. 진남재군은 ‘뜨거운 곳에 들어가니 기분이 불쾌하다. 고체가 된 나를 인간들이 먹어서 생을 마감했다’고 적었다.

 대청중 과학시간은 실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과학교과에 국어교과를 접목시킨 ‘융합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해 1학년 과학과목을 중심으로 ‘융합인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융합인재교육(STEAM)은 과학(Science)·기술(Technology)·공학(Engineering)·수학(Mathematics)·예술(Art) 분야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과학·국어교과 담당교사는 물론 기술·음악교과 교사가 참여해 46개의 통합교과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물질의 상태 변화에 대한 실험을 진행한 뒤 실험과정에서 느낀 점을 시화나 만화·포스터·노래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배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김 교사는 “융합인재교육은 어렵고 대단한 게 아니다”라며 “초콜릿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보거나 짧은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탐구 활동 통해 자기주도학습능력 향상

(왼쪽부터) 현기완·김석현·서현빈군

대청중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가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자유탐구’ 활동이다. 학생들은 새 학기가 되면 ‘자유탐구’라고 적힌 노란색 표지의 책자를 받는다. 책자에는 탐구주제 정하는 법과 실험방법, 보고서 작성법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학생들은 스스로 탐구주제를 정해 실험을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탐구보고서로 작성, 제출해야 한다. 보고서 내용은 2학기 과학수행평가에 반영된다. 매년 8월엔 교내 학생탐구발표대회를 열어 수상작을 선정하고,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학생들은 학교대표로 외부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지난해 학교대표로 뽑힌 서현빈·현기완·김석현·이재홍(3학년)군 팀은 서울시 산출물 대회에 참가해 은상을 받았다. 주제는 ‘휴대전화 자판의 비교, 그리고 개선방안’이었다. 평소 휴대전화에 관심이 많았던 서군이 주제를 정했다. “아는 형이 갤럭시S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글자판 표준으로 선정된 ‘천지인’ 자판을 불편해하더라고요.” 서군은 ‘천지인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더 나은 자판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팀원들과 함께 천지인 자판을 분석했다. 천지인의 경우 자판을 칠 때 손의 이동거리가 많고, 앞글자의 종성과 뒷글자의 초성이 같을 때 연속 입력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자음과 모음 자판을 재배열해 4개의 수정본을 만들었다. 수정본1은 모음자판을 중간에 배치했고, 수정본2는 모음을 세로로 배열하는 식이었다. 수정본 4개를 같은 학교 학생 156명에게 써보게 한 뒤 ‘수정본1이 가장 편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친구 2명과 교사 1명을 대상으로 기존 갤럭시S 자판과 수정본1로 박목월의 시 ‘산도화’를 치게 했다. 그 결과 수정본1의 자판 입력 속도가 기존 자판에 비해 20~30초 빠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실험결과를 토대로 수정본1을 특허신청을 했다. 현기완군은 “자유탐구 활동을 통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습관을 들였다”며 “이 활동은 제 꿈까지 바꿔놨다”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의사를 목표로 했던 그는 이제 로켓연구원을 꿈꾼다.

인터뷰 대청중 신춘희 교장

“강남치곤 낙후된 학교 시설 새단장하고 교내 영어대회 열어 재능 뽐낼 기회 마련”

신춘희(58) 교장은 2009년 9월 대청중에 부임했다. 신 교장이 느낀 대청중의 이미지는 ‘낙후된 학교’였다. 강남지역 학교치곤 시설이 열악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갔다. 학원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학생들을 학교로 돌아오게 만드는 게 신 교장의 최우선 과제였다. 시설을 개선하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

-교장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뭔가.

“시설부터 바꿨다. 내가 학생이라도 학교에 있기 싫을 것 같더라. 학생회의실·양호실·컴퓨터실 등 학생들의 복지와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7개 교실을 리모델링했다. 4층에 있는 도서실을 1층으로 옮겨 ‘북카페’를 만들었다. 1층에 있던 어두컴컴한 컴퓨터실을 3층으로 이전했다. 그 자리를 학생공감상담실 ‘위클래스(Wee Class)’로 꾸몄다. 학생들이 고민과 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설 개선만으론 부족하지 않나.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가장 먼저 만든 프로그램은 영재학급이다. 과학교사 출신으로서 과학·수학 영재교육에 관심이 크다. 담임교사들로부터 우수한 학생들을 추천 받아 영재교육원 선발 시험문제를 풀게 했는데 실제 영재교육원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이 많았다. 서울시교육청에 찾아가 학생들의 우수성을 설명해가며 영재학급 개설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마침내 허가를 받았다. 현재 과학반 2개와 수학반 1개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어에 뛰어난 학생이 많은 걸로 안다.

“그렇다. 재학생의 60% 정도가 해외거주 경험이 있다. 하지만 부임해보니 학생들이 자신의 외국어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교내대회가 전혀 없더라. 외국어고 입시가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바뀌면서 교내대회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교내대회로 학생들의 스펙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교내 영어토론대회·영어논술대회 등을 만든 이유다.”

-대청중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나.

“자유탐구 활동이 있다. 재학생 전원이 1년에 한 차례 논문을 쓴다. 졸업 전까지 모두 세 번의 논문을 완성하는 셈이다.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주제로 잡는다. 과학부터 예술까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하면 된다. 연초에 탐구주제를 정해 8월 말까지 논문을 완성하도록 지도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연구방법과 보고서 작성 요령 등을 배우고, 문제해결력과 자기주도학습 능력,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

-지역의 특성상 교육열이 굉장히 높다.

“시험점수나 대회 입상에 상당히 민감하다. 실제로 시험점수를 올려주거나 지각 처리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있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하면 학교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교사들에게 “단 한 명의 예외도 인정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년여가 흐르니 학생·학부모들이 학교의 운영방침을 믿고 따른다.”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나.

“이 지역 학부모 중에는 엘리트가 많다. 성적을 둘러싸고 학부모와 학생 간 갈등이 많다. 지난해부터 부녀자캠프를 운영한 이유다. 말썽 피우는 학생이 있으면 담임들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부녀자캠프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학생·학부모 대부분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손잡고 가는 모습을 봤다. 학생이 공부에 집중하려면 부모와의 관계도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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