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경찰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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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성우
사회부문 기자

빌 브래튼은 1991년 보스턴 경찰청장을 시작으로 뉴욕·로스앤젤레스 등 범죄율이 높은 미국 대도시 세 곳의 경찰청장을 차례로 지냈다. 그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학설)’을 실행에 옮겨 높은 범죄율로 악명 높던 뉴욕 도심을 정화했다. 그의 성공사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지난해엔 도심 난동을 겪은 영국의 치안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물론 그의 인생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사생활, 무관용 정책(zero tolerance policy) 등으로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브래튼의 명성이 여전한 건 그가 가는 곳마다 시민이 체감할 정도로 범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브래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우리나라 경찰청장들의 모습이 안타까워서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식당(함바) 비리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돼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말해 놓고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아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기용 경찰청장 후보자는 위장전입 등으로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에서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김기용 후보자의 경우 ‘위장전입은 다른 기관의 상당수 고위직도 저질렀던 일종의 관행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경찰이 처한 상황은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이다. 더 이상의 충격을 견디기 어려운, 최악의 국면인 것이다.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에서 보여 준 경찰의 무책임과 거짓말은 검경 수사권 갈등에서 경찰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까지 질리게 만들었다. 시중에선 ‘저런 경찰에 수사권을 주면 큰일 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뿐인가.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수십억원을 월급처럼 받아 챙긴 파출소 경찰관들을 훑고 경찰 고위직을 향하고 있다. 무능과 부패라는 두 개의 핵폭탄이 한꺼번에 터진 형국이다.

 지난달 검찰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사 의뢰한 사건 일부를 경찰에 내려보냈다. 그러자 경찰은 “큰 사건은 검찰이 챙기고, 허드렛일은 우리한테 떠넘긴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브래튼의 사례를 보면 정답은 그 ‘허드렛일’에 있다. 현장에서 몸을 던져 범죄를 막고, 저질러진 범죄는 반드시 범인을 잡는 진짜 수사 말이다. 경찰 사령탑 교체를 계기로 “경찰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왔으면 한다. 그래야 경찰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