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린 소비심리에 얼어붙는 시장

중앙일보

입력

"쓰고 삽시다-. " '맞아 죽을 각오' 까지야 아니더라도 요즘의 썰렁한 세밑을 놓고는 이런 역(逆)발상의 경제 처방을 내놓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경제성장의 텃밭인 소비가 지나치게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물가가 많이 올라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소득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고 주가와 부동산 값이 폭락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이같은 소득 감소보다 최근의 소비는 더 큰 폭으로 줄고 있어 걱정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안좋아질 수 있다는 심리 때문에 있는 돈도 안 쓰고 보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올해 국민총저축률은 지난해 상반기의 32.1%보다 더 높아지리라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있는 사람도 안 쓰다가는 다들 더 어려워질 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3분기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우리 경제가 9.2% 성장한 데 비해 민간소비는 5.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성장.소비 증가율 격차가 3.5%포인트나 되는데 이는 지난 2분기의 0.7%포인트에 비해 다섯배나 된다.

정정호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과거 경기 하강기에는 성장률보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1%포인트 가량 낮은 수준에 머물렀던 경우가 대부분" 이라며 "최근의 소비 위축은 소득 감소폭에 비해 지나친 감이 있다" 고 말했다.

문제는 불안한 국민이 앞으로도 소비를 더 줄이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10월 중 소비자전망조사에서 6개월 후의 소비계획을 묻는 소비자기대지수는 89.8로 전달(90.9)보다 더 떨어졌다.

소비자기대지수가 100 이하일 경우 소비를 줄이겠다는 가구가 늘리겠다는 가구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과도한 소비 위축이 장기간에 걸친 생산 감소로 이어져 자칫 경제가 헤어나기 힘든 침체의 늪에 빠져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

최근 구조조정의 한파 속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있고, 내년 수출 증가세도 올해보다 못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전체 GDP 중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마저 지나치게 줄어들 경우 우리 경제를 떠받칠 근본축이 무너져버린다는 것이다(심재웅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에 따라 하루 빨리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경제 주체들의 불안심리를 가라앉힘으로써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다.

김준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은 "경제지표가 아직 괜찮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내일 우리 집 가장이 실직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잠재울 순 없다" 면서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을 빨리 마무리함으로써 불안요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만이 소비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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