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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맹이라고?”…“우리도 ‘번개’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터넷의 사각지대로 평가받았던 40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대의 중간에 끼어 ‘아나털’로 불리던 이들이 인터넷의 전면에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40대들만을 위한 사이트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날 우리는 풍요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또 우리보다 자라나는 후손들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 온 한 시대의 주역들입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퇴보하고 정보화, 지식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시대에 뒤진 컴맹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차츰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세대입니다. 우리가 그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문제는 용기입니다. 우리도 컴퓨터를 통한 사이버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용기입니다. 40대 50대 네티즌들이여, 우리 용기를 가집시다.(후략)”

이 글은 커뮤니티 사이트 다음카페에 개설된 40∼50대 커뮤니티 ‘용기네 카페’(http://cafe.daum.net/tops)의‘대문’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글이다. 만약에 40대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30대나 50대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40대가 느끼는 것만큼 절실하고 마음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40대들은 어느 틈엔가 ‘낀세대’가 되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을 낀세대라고 생각한다. 20대조차도 N세대인 10대와 386세대인 30대 사이에 끼어 엉거주춤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이미 ‘인터넷에 익숙하다’는 30대와 ‘인터넷 몰라도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50대의 중간에 40대들은 ‘끼어’ 있다.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로도 가지 못하는 40대들. 그들은 스스로를 ‘아나털’이라고 부른다.

40대 대화방도 급증

40대들의 인터넷 이용률은 20%로 낮지만 이용자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40대가 인터넷의 사각지대라는 것은 통계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브랜드컨설팅그룹의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 비율(최근 3개월 내 인터넷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40대의 경우 2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74.1%의 10대나 67.8%의 20대와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35%의 30대와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시대의 주역이었다는 말이 무색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추세가 바뀌고 있다. 40대들이 서서히 인터넷 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40대들을 위한 전용 사이트들이 속속 생겨나는가 하면 각 인터넷 사이트의 대화방에는 40대들만의 대화방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대화방에서 만난 김선동씨(42)는 “인터넷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고 대화방도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대상은 주로 20대나 30대들이었다. 처음에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좋았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공감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요즘은 40대들의 대화방을 주로 드나들며 같은 또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수치상으로도 40대의 인터넷 이용자 증가율은 괄목할 만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40대들의 사용자 증가율은 1백48%로 10대의 78%, 30대의 1백2%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플 475의 김갑동 이사는 “지난 6월 오픈한 이후 5개월만에 회원이 1만명으로 늘어났다”며 “ADSL이나 케이블망 같은 초고속 통신망의 가정보급이 40대들을 컴퓨터 앞으로 불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장이나 PC방에서 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20~30대에 비해 40대들의 경우 가정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비중이 높다”고 말한다.

우선 주부들의 비중이 높은데다 남자들의 경우도 직장인들보다 자영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이사는 “회원 중 절반 정도가 자영업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40대들은 컴퓨터가 없어서 혹은 인터넷을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시간대에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자식들을 피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수진씨도 “지난 9월까지 40~50대 전용 사이트들이 80여 개에 4천여명에 달했는데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이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송추의 ‘번개’ 70여명

지난 10월 28일 경기도 송추. 중년 남녀 70여명이 참가한 이색행사가 하나 열렸다. 이름은 ‘40대 힘내세요’. 40대 전용 인터넷 사이트인 ‘피플 475(http://www.people475.com)’에서 기획한 행사다.

그동안 이 사이트를 통해서 아이디로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모인 것이다. 이른바 번개모임. 10대나 20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번개모임이 40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유쾌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사람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40대라는 점 뿐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아마 만날 이유도, 만날 기회도 없었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아이디와 글, 대화로만 알던 상대방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물 간’ 옛날 가수인 ‘하사와 병장’이 초대됐다. 40대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줄기차게 불러댔다.

이 행사를 준비한 피플 475 측에서는 이번 행사의 성공에 힘입어 곧 연말에는 40대들에게 인기 있는 포크가수들을 섭외해, 콘서트나 디너쇼 형식의 이벤트를 다시 한 번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카페에서도 30∼40대를 위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추억의 갤러리 등 그 세대들만이 알 수 있는 사진이나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전년대비 인터넷 이용자 증가율(%)연령대10대20대30대40대50대증가율78.170.0102.8148.886.040대들이 인터넷에 접근하고 있는 키워드는 ‘문화’며 ‘향수’다. 이미 흘러가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TV를 틀어도, 라디오를 틀어도 모두 10대들을 위한 콘텐츠만 생산하고 있다. 대중매체에 대해 40대들은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송창식’이 있고 ‘윤형주’가 있다. MP3나 리얼 오디오 파일로 올려진 옛노래를 들으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만난 이석진씨(45. 경기도 안양시)는 “인터넷을 배운 후 옛날 노래들을 내려받아 아내에게 들려주는 게 요즘의 가장 큰 낙”이라며 “인터넷 덕분에 아내에게도 좋은 점수를 따고 있다”고 말했다.

피플 475의 김이사는 “현재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음악파일을 제공하고 있는 ‘음악다방’이다. TV나 라디오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흘러간 옛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40대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들은 주로 방송, 신문 등 기본적인 정보채널 이외에 음악을 비롯한 문화 사이트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시판에 올리는 글들 대부분도 ‘예전에 우리는∼’으로 시작되는 추억 이야기들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이들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피플 475에서는 회원들이 올린 ‘주옥’ 같은 글들을 모아 책을 펴낼 계획으로 있다. 현재 편집작업에 들어갔으며 올해 내에 이들의 이야기가 출판될 예정이다.

치열한 젊음 보상 못받는 475세대

최근에는 40대들도 자영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컴퓨터나 인터넷 관련 창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난 11월 28일 서울 충정로에서는 ‘민주기업가 회의’ 창립모임이 열렸다. 70년대와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 운동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기업가로 변신해 다시 모인 것이다. 이중에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벤처기업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독재 타도’에 앞장섰다가 제적당하거나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40대, 70년대 학번, 50년대생. 그들을 475 세대라고 부른다. 민주화 운동에 젊음을 바친 것은 똑같지만 386만큼 인정받지는 못했다. 386들이 정치, 경제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과 대조적이다.

IMF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명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 중 대부분은 40대였다. 구조조정의 된서리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곧 벤처 열풍이 불었지만 이 혜택은 모두 30대들이 나누어 가졌다. 지금 웬만한 벤처기업 CEO 중에 40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굴뚝기업에서는 경영을 맡기에 너무 이르고 벤처기업에서는 경영을 맡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이 475세대들의 현재 모습이다.

미국의 경우 GE와 AT&T 등 대기업의 경영진들이 잇따라 후계에 40대를 내세우며 세대 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영향이 40대들에게 주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또 다시 구조조정의 한바탕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97년 살아남았던 40대들은 그 구조조정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닥쳐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40대 남성은 “그동안 컴퓨터와 인터넷을 많이 공부해왔다”며 “또 구조조정의 여파가 다가온다면 인터넷이나 컴퓨터 관련분야의 창업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변에서도 예전처럼 식당이나 자영업보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통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에 달한다”며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젊은 세대에 비해 약하지만 전체를 내다보는 눈은 오히려 앞서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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