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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의회와 19대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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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윤창희
사회1부 기자

자유 경쟁의 폐해를 지적하는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코넬대) 교수는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을 예로 든다. 이 사슴의 뿔은 외부 포식자에게 맞서는 무기가 아니다. 오로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쓰인다. 뿔이 남보다 커야 한다. 돌연변이를 통해 큰 뿔을 갖게 된 수컷들은 승리하게 되고, 돌연변이는 빠르게 퍼진다. 돌연변이가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되면서 요즘 북미 대륙에서 큰 놈은 뿔 길이가 4피트(약 1.2m)나 된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종족 전체로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 기동력이 떨어져 늑대에게 잡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집단 전체로는 뿔이 작은 게 분명 유리하지만 다른 사슴과의 경쟁에서 지기 때문에 작은 뿔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종족 전체가 손해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찰스 다윈의 이론을 기초로 프랭크 교수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 100년 뒤 경제학의 아버지는 애덤 스미스가 아닌 다윈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여기서 이 얘길 꺼내며 거창한 경제철학 논쟁을 하자는 건 아니다. 서울시 출입기자로서 그의 책을 읽으면서 도시계획이나 부동산·교통 분야와 관련이 깊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분야는 개인과 지역, 집단의 이기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내 땅에 내 맘대로 원하는 높이와 모양으로 집과 건물을 짓고, 우리 지역을 지나는 전철을 모두 지하화할 수 있다면 개인과 지역엔 좋지만 사회 전체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집단 이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공약이 쏟아졌다. ‘기부채납 비율을 낮추고, 용적률은 올려주고, 철도 노선을 끌어오겠다’. 한정된 재원을 감안하지 않고 지역 이익만 우선한 무리한 공약이 부지기수였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선거에서 지역 공약이 안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다시 한번 새겨야 할 원칙이 있다. 의원들은 지역구의 대표가 아닌 전 국민의 대표라는 ‘국민대표의 원리’다.

 중세 말기 유럽에서 탄생한 신분제 의회에는 귀족·사제·시민대표가 각각 부회(部會)를 가지고 있었다. 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세력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소환을 당했다. 17세기께부터 이 ‘명령적 위임제도’가 허물어지고 국민대표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1791년 프랑스헌법은 “현(縣)에서 지명된 대표자는 그 현의 대표자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자”라고 규정했다. 이것이 오늘날 의회제도의 기본 개념이다.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 사법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저는 이번 임기 중에 우리 지역구를 위해 인프라를 확 바꾸겠습니다.”(A의원) (문제) 위와 같은 국회의원의 발언에 대한 헌법적 평가로 올바른 것은? (정답) ‘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발언으로 적절치 않다’였다. 정답이 좀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다. 지역 민원과 정파적 이익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 전체의 공동이익이 우선이다. 19대 선량(選良)들이 새겨야 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