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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누구의 손이 올라 갈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美 연방 대법원의 판결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연방 대법관들 중에 12월 1일의 심리가 끝난 후 자신들이 내릴 결정을 이미 정해놓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법관들은 민주당이 장악한 플로리다州 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 시한을 연장하고 재검표 결과를 州의 공식 집계에 포함하도록 한 판결이 州법을 부당하게 바꾼 것인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그 대답은 명백하지 않지만 이의를 제기한 공화당 변호사들은 그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연방 대법관들은 이번 결정이 대통령 선거 결과를 최종적으로 판가름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막후 심리 과정에서는 서로 이견을 보일지 몰라도 만장일치의 합의를 도출하려 노력할 것이다.

조지 W. 부시의 변호인단은 연방 대법관들이 문제를 폭넓게 검토해주길 원한다. 플로리다의 재검표가 다른 곳에서는 유효표로 간주되지 않았을 종류의 기표를 유효처리하는 등 지극히 독단적이며 파당적인 성향이 엿보이므로 적법절차 및 평등 보호법에 위배되는지를 가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현재로서는 오로지 州와 연방 선거법이 얽혀 있는 문제만을 다루기로 했다. 공화당 변호인단은 플로리다州 대법원이 원래의 확정 시한을 연장함으로써 연방헌법 제2조 1항(“각 州는 州법원이 아니라 州의회에서 제정한 법에 따라 선거인단을 선출해야 한다”)
을 위반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부시측은 또 州 선거인단은 ‘선거 이전에 발효된 법’에 따라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한 1887년도 연방 법령을 거론한다.

부시의 변호사들은 플로리다州 대법원이 州법을 무시하고 선거 후에 새로운 법을 만듦으로써 연방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고어의 변호인단은 플로리다州 대법원이 법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州 선거법들간의 상충되는 부분을 해결했을 뿐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연방 대법관들은 소송을 맡으면서 양측에 한 가지 주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오도록 지시했다. “플로리다州 대법원이 연방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 것인?굡遮?질문이었다.

연방 대법원으로서는 플로리다州 대법원의 결정을 재확인해 州로 환송하는 편이 가장 쉬운 해결책일 것이다. 그러나 연방 대법관들은 플로리다州 대법원의 결정을 뒤엎게 될 경우 개표 파동을 조속히 종식시킬 해결책도 찾아낼 것이다. 더이상의 재검표는 없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일부 연방 대법관들은 부시측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나 부시측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이 반드시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전조는 아니다. 현 연방 대법원이 보수 성향을 띠고 있어 자연히 고어보다는 부시에게 기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착각이다.

9명의 대법관 중 7명이 공화당 정권 하에서 임명됐지만, 그 7명 중 열렬한 보수파는 3명(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앤토닌 스칼리아 및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뿐이다. 다른 2명(앤서니 케네디와 샌드라 데이 오코너)
도 州의 권리 문제에서는 보수 성향을 띠지만 기본적으로는 중도파다.

또다른 2명(존 폴 스티븐스와 데이비드 수터)
은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및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처럼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9명의 대법관 중 고어보다는 부시 편을 들어줄 사람이 많을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연방 대법관 가운데 3명의 보수파와 2명의 중도파가 4명의 진보파보다 州의 권리 문제에 좀더 동조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정도의 문제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9명의 연방 대법관 각각은 여러 차례 州 대법원의 결정을 번복하고 헌법이나 연방법에 부합되지 않는 州 선거법을 폐기하는 표결을 내린 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선거법을 포함한 州법을 옹호하는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

가장 보수적인 스칼리아의 경우 그는 州법 옹호론자인 만큼 자연스럽게 플로리다州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법 해석상 철저한 원문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는 그로 하여금 州의회의 마감시한을 무시하고 ‘유권자의 뜻’을 자의적으로 부과하려는 플로리다州 법원의 결정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연방 대법관들은 또 이번 사건으로 자신들의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는 점도 유념하고 있다. 그들이 보수파-진보파의 구성 비율(5-4)
대로 부시나 고어의 어느 한 쪽에 대통령직을 넘겨줄 경우 대법관들은 이번 선거 과정에 참여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씌워진 당파적이라는 비난에서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연방 대법원이 혼란과 불화 속에서도 냉정함과 이성의 목소리를 견지해 왔다는 소중한 평판을 지키기 위해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동료 대법관들에게 심리 과정에서는 개인적인 차이를 드러낼지라도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목소리로 얘기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을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의 가장 비중있는 사건에 속하는 두 건의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은 만장일치의 판결로 스스로의 신뢰성을 지킨 바 있다. 1954년 ‘브라운 對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대법관들은 자체의 심각한 의견차이를 극복하고 州법원의 학교 흑백분리 결정을 만장일치로 폐기시켰다. 또 1974년 ‘연방정부 對 닉슨’ 사건에서는 닉슨에게 녹음테이프를 특별검사에게 넘겨줄 것을 명령했고, 그 판결은 결국 닉슨의 사임으로 귀결됐다. 그 두 사건에서 1명 이상의 대법관은 하나의 강력한 목소리를 위해 자신의 회의적인 태도를 억눌렀다.(Stuart Taylor Jr. 기자)

[연방 대법관 9명의 성향]

연방 대법관들이 플로리다州 대법원의 결정에 어떤 식의 판결을 내릴지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州의 권리 및 다른 문제들에 관해 지금까지 내린 판결을 토대로 그들의 정치성향을 분석해본다.

▶보수파 : 렌퀴스트, 스칼리아, 토머스. 보통은 州의 권리를 존중한다. 그러나 인종에 따라 선거구를 정한다거나, 연방의 이익에 영향을 줄 州법원의 진보적 판결일 경우에는 기각하거나 뒤집기도 했다.

▶진보파 : 스티븐스, 수터, 긴즈버그, 브레이어. 낙태, 사형, 선거구 결정과 관련한 州법원의 판결에 서슴없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플로리다州의 싸움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지 미지수다.

▶중도파 : 오코너, 케네디. 낙태, 동성애자 인권 등에서는 진보파와, 州의 권리에 관해서는 보수파와 의견을 같이 한다. 중도파는 그러나 보수파와 달리 자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법에는 반대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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