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정치 테마주 관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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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정재
경제부장

정치와 경제가 만나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랴만, 요즘 특히 접촉면이 커지는 곳이 있다. 주식시장, 그중에서도 정치 테마주다. 정치 테마주는 정치와 닮은꼴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끌고 밀고 당겨준다. 4·11총선이 끝나면서 바뀐 정치판 지형은 정치 테마주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박근혜·안철수 테마주가 요 며칠 급등하고 문재인·정몽준 테마주는 곤두박질했다. 정치와 정치 테마주, 둘의 이런 요상한 합주곡은 연말까지 이어질 터다. 증권업계 최고 전략투자가로 꼽히는 K회장은 “한국 증시에서 정치와 정치 테마주의 상관관계는 유별나다”며 “인맥과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와 정치 테마주, 둘은 얼추 다섯 가지가 닮았다. 하나, 일찍 줄 설수록 먹을 게 많다. 증시의 내로라하는 고수 K씨. 기업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가치투자가 전공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가을 난데없이 안철수연구소 주식 얘기를 꺼냈다. 막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던 때다. “사두면 돈이 될 텐데, 소위 가치투자 한다는 내가 정치 테마주를 살 수는 없고….” 당시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3만4000원 선. 3개월 만에 16만7200원까지 치솟았다(지금은 11만1500원이다). 지금 뛰어들면 어떨까. 워낙 변동성이 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권도 마찬가지. “지금 박근혜에 줄 서면 인천 앞바다에 빠진다”는 우스개가 2007년에 이어 다시 나온다.

 둘, 줄 잘못 서면 찬밥이요, 상투 잡으면 쪽박이다. 정치 테마주란 게 본래 정치만큼이나 허황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W투자증권 관계자는 “워낙 변동성이 크다 보니 대박은 극히 적고 쪽박만 널렸다”며 “주식이나 정치나 ‘줄 잘 서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아예 정치 테마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총선 직후 문재인·정몽준 테마주가 곤두박질하자 벌써 “줄 잘못 서서 찬밥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줄 서기 못지않게 타이밍 찾기도 어렵다. 언제가 상투인지 맞히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증시를 꿰고 앞날까지 정확히 내다봐야 한다. 신의 영역에 가깝다. 정치판이라고 다르지 않다. 요리 조리 재다 판세가 다 결정난 뒤 뛰어들었다간 아까운 시간·돈 날리고 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다.

 셋,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우긴다. 온갖 지연·학연·혈연을 동원해 줄을 대기는 테마주도 마찬가지다. 올 초 급등했던 우성사료. 안철수와 친분 있다고 알려진 신경민 전 MBC 앵커의 사돈가로 알려진 게 전부다. 그래도 당당히 안철수 테마주 반열에 올랐다. 아니면 말고 식도 많다.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됐던 대현은 이 회사 대표가 문 이사장과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나중에 사진의 주인공이 대표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문재인 테마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렸다.

 넷, 말려도 듣지 않는다. 지난해 말 정치 테마주가 극성을 부리자 금융 당국이 칼을 뺐다. 전담팀을 꾸려 단속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올 초 정치 테마주는 70여 개, 시가총액 12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2월 안철수연구소 주식을 산 6명의 개인투자자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주변에선 말렸지만 투자했다. 계속 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 정당은 20개로 늘었고, 한 지역구마다 10여 명씩 출마한 곳도 꽤 된다. 민주통합당이 사퇴를 권했지만 ‘나꼼수’ 김용민은 듣지 않았다.

 다섯, 승자가 독식한다. 지금은 안철수·박근혜 테마주가 나란히 상승 행진 중이지만, 올 연말쯤엔 부침이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어느 한쪽은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권은 더하다. 진 쪽은 이긴 쪽 눈치까지 봐야 한다. 실패 리스크가 주식보다 크다는 얘기다. 나눠 지면 줄어드는 게 위험이다. 상호 존중과 타협, 체제 개편까지 위험을 나눠 질 방법도 많다. 그러나 여야는 승자 독식만 노릴 뿐 위험 관리엔 별 관심이 없다. 한국 정치, 언제까지 테마주보다 위험하게 놔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