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향수' 등 한 주를 여는 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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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란 쿤데라 노익장 과시한 신작 발표
'향수'(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

예술 작품 창작자에게 '노익장'이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사람의 생각과 삶을 담아내는 게 큰 작품 창작의 기본 전략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더 훌륭한 작품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서구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밀란 쿤데라가 신작장편 '향수'(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를 냈어요. 공산정권 붕괴 이후 프라하를 찾는 남녀 망명자를 통해 그려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 장편에서도 역시 밀란 쿤데라 특유의 섹스와 사랑, 실존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살아 춤추고 있답니다. 20년간 각각 프랑스와 덴마크로 망명해 살고 있던 이레나와 조제프는 밤마다 쫓기는 악몽을 꾸면서 조국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을 향해 끝없이 떠나는 남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일입니다.

■ 한국 문화 속 소나무의 모든 것
'소나무'(정동주 지음, 거름 펴냄)

우리는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껍질로 빚은 송기떡을 먹고 자라, 죽을 때 소나무로 만든 관에 누워 죽는다고 하지요. 그래서 우리 문화를 '소나무의 문화'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예로부터 존송(尊松)이라는 말이 전해올 만큼 소나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각별했습니다.

대하소설 '백정'(정동주 지음, 우리문학사 펴냄)의 작가 정동주 님이 펴낸 '소나무'(정동주 지음, 거름 펴냄)라는 책은 바로 우리 문화 속의 소나무를 속속들이 파헤친 무척 상쾌한 책입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심지어는 그리스 신화 속의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소나무의 모든 것을 들고 나온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지은이는 우리 산천의 소나무를 담기 위해 전국 산천을 돌아다녔더군요. 또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쓰여진 문학과 미술 작품, 그리고 대중가요까지 모두 모아 풀어가고 있습니다.

■ 총선연대의 주요 활동 취재 기록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문경란 지음, 나남출판 펴냄)

총선연대의 낙선 운동 등 이른바 '유권자 혁명'의 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취재 기록을 모은 글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올 초, 연일 대형 매스컴의 톱 뉴스로 다뤄지던 총선연대의 활동을 밀착 취재했던 취재기자가 기사로 다 못쓴 이야기, NGO 활동에 대한 개인적 소감, 기자로서 겪어야 했던 비애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유권자는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큰 사건을 이끌어냈지만, 정치인들의 요즘 작태는 여전히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행태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봄 총선 때 올렸던 시민운동의 성과가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가 무엇을 기대했고, 그 기대를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었는지 한번 쯤 되돌아 볼 일입니다.

■ 근대성 극복을 위한 대안 모색
인문학 평론지 계간 '당대비평' 겨울호

철마다 한번씩 우리 시대의 논객들이 당면한 현안을 들춰내는 계간 '당대비평'이 이번 겨울에는 우리 역사학의 끊임없는 논쟁 점인 '근대와 식민주의 인식'을 들고 나왔습니다.

식민지 시대 해석에 있어 수탈론과 근대화론이 놓치기 쉬운 회색지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쟁은 일본의 자유주의 사관을 둘러싼 역사 교과서 논쟁을 계기로 제기된 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로잡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호에는 이밖에 지난 10월 아셈 회의의 카운터 파트로 열린 '아셈2000 민간 포럼'에 참가했던 재외 한국인 활동가들의 긴급 좌담 '지구화 시대의 국제 NGO운동', 일본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 발행의 '사상'지의 전 편집장 코지마 키요시와 고려대 영문과 교수 김우창 님이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 대해 벌인 대담 등도 눈에 띄는 글입니다.

■ 활자시대가 '모노'라면 디지털은 감성 스테레오
'굿바이 구텐베르크'(김정탁 지음, 새천년 펴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펼쳐진 책 문화가 서양 근대의 이성주의를 고착시켰다는 흥미로운 주장의 책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전공인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탁 님은 이 책에서 자신의 전공인 맥루한에서부터 플라톤, 칸트, 보드리야르, 레비 스트로스 등 서구적 사유의 결과를 섭렵합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의 유불도(儒佛道)에 이르기까지 지은이의 관심 폭은 끝간 데 없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지은이가 보여주는 디지털 미래에 대한 접근법은 참신합니다. 이른바 인간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문화의 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인쇄 미디어에서 디지털 영상 미디어로 바뀌는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역사를 통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회복한 종합적 인간의 발견이라는 미래 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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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
- '소나무'(정동주 지음, 거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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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구텐베르크'(김정탁 지음, 새천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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