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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작가·피아니스트... 250년 전 로봇 삼총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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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호 23면

1 자케 드로가 제공한 전시 공식 포스터.노래하는 새 형태의 오토마통을 담고 있는 회중 시계는 1785년 중국 시장을 위해 제작됐다.

‘로보캅’ ‘터미네이터’ ‘바이센테니얼 맨’ ‘월 E’ ‘트랜스포머’….
인간을 똑 닮은 사이보그, 미래나 우주에서 온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흥미진진하다. 이젠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 실현되기도 한다. 간단한 집안 청소를 하고, 공장에서는 포장이나 조립을 대신한다. 춤을 추고 대화도 하면서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는 지능형까지, 인간을 닮은 로봇의 진화는 놀라울 정도다.
‘로봇(Robot)’은 작업을 자동으로 행하는 기계나 장치를 말한다. 체코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apek)가 1920년 쓴 희곡 『로섬의 유니버셜 로봇』에서 처음 사용된 말이다. 원래는 ‘고된 일’을 뜻하는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

스위스 시계공학의 정수, 태엽식 자동인형 ‘오토마타’

1495년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중세 기사 모양의 기계 인간을 설계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로봇은 ‘어떤 이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이란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오토마통(automaton) 또는 오토마타(automata)라 불렸다. 전기 발명 이전에 기계적인 힘으로만 움직이는 인형이다. 태엽을 감아 태엽이 풀리는 힘을 이용하는 시계의 원리와 유사하지만 훨씬 더 복잡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739년 프랑스의 엔지니어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이 제작한 ‘소화하는 오리’가 있다. 이 오리는 물을 마시고 꽁무니로 물을 빼내는가 하면, 울기도 한다.

2 뉘샤텔 예술&역사 박물관이소장한 자케 드로의 오토마타3인방. 옷은 달라졌지만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작동한다.3 피에르 자케 드로의 초상4 도안가가 그린 그림5 ‘피아노를 치는 음악가’6,7 ‘작가’가 글을 적는 모습.인형의 몸 안에는 이렇게 태엽,톱니바퀴가 복잡하게 들어가 있다.8 오프 센터 다이얼과 큰 초침창이 8자를 이루는 자케 드로 특유의 다이얼 모습을 잘 보여주는 회중 시계.

스와치그룹의 시계 브랜드 자케 드로의 창업자, 피에르 자케 드로(Pierre Jaquet Droz)와 그의 아들 앙리-루이 자케 드로(Henri-Louis Jaquet Droz), 입양한 아들 장-프레데릭 레쇼(Jean-Frederic Leschot)가 만든 3개의 자동인형도 유명하다. 이들은 1768년부터 1774년 사이 ‘피아노 치는 음악가(Musician)’ ‘그림 그리는 도안가(Draughtsman)’ ‘글씨 쓰는 작가(Writer)’를 만들었다.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을 한 음악가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피아노를 친다. 연주하는 동안엔 가슴이 숨을 쉬듯 움직인다. 도안가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손에 쥔 연필의 완급을 조절해 그림 선에 강약을 주고, 입김을 ‘훅~’ 불기도 한다. 당시엔 연필심이 무뎌서 검은 가루가 많이 날렸는데, 이를 털어낼 수 있도록 배려한 세심한 장치다. 늠름한 개의 모습 등 4개 그림을 그려낸다. 작가는 ‘뉘샤텔의 자케 드로 오트마트(Les automates Jaquet Droz a neuchate)’ 등 40자에 달하는 글자로 이뤄진 문장을 써낸다. 각각의 인형 속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가 들어 있다. 등을 열어 기계 속 ‘디스크’를 교체하면 음악가의 연주 음악도, 도안가의 그림, 작가의 문장도 바꿀 수 있다.

18세기 말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인형들을 창조해 낸 자케 드로는 자신이 만든 시계를 더 많이 팔기 위한 홍보 도구로 자동인형을 이용했다. 실제로 큰 효과를 얻어 1775년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식 로봇, ‘오토마타’를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자케 드로는 제작 기술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는 마케팅 아이디어까지 지닌 천재 엔지니어였던 셈이다.

휴머노이드라 부르는 인간형 로봇까지 경험한 21세기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신기한 자동인형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4월 29일부터 9월 30일까지 스위스 워치 밸리에 있는 박물관 세 곳에서 펼쳐진다. 뉘샤텔 예술 & 역사 미술관(www.mahn.ch)에서는 자케 드로와 레쇼의 작품을, 라쇼드퐁에 위치한 국제 시계 박물관(www.ihm.ch)에서는 자동인형을 움직이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르로클에 위치한 샤토 데 몽(www.mhl-monts.ch)에서는 자동 인형의 마스터피스를 전시한다.

지난 1월, 그중 한 곳인 뉘샤텔 예술&역사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이미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시를 주도한 박물관의 학예연구원인 카롤린 주니에는 “전시 기간엔 세 개 중 한 개를 매일 시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자동인형 각각의 수리와 분해 소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시연해 왔다.
관람객을 위해 3개의 박물관을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가이드 투어도 제공한다. 전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공식 사이트(www.automatesetmerveilles.ch)에서 얻을 수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11년 영화 ‘휴고’엔 아버지가 남긴 자동인형이 그려준 달나라 그림을 통해 환상의 모험을 떠나는 소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영화처럼, 250년 전 어느 천재의 집념과 끈기가 만들어낸 자동인형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스와치그룹의 톱3 브랜드 '자케 드로'

시계브랜드 '자케 드로(Jaquet Droz)'는 1738년 스위스 산골에 작은 시계 공방을 연 피에르 자케 드로의 손끝에서 시작했다. 그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발명품을 알렸는데, 첫 번째 고객으로 스페인 왕실에 시계를 판매해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가 스페인에서 거둔 성공은 '오토마타' 제작을 위한 투자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아들 앙리-루이가 합류했고, 런던에 두 번째 공방을 여는 등 전 세계를 상대로 주문 판매가 이뤄졌다.
자케 드로의 무대는 중국·인도·일본까지 확대됐다. 18세기 말 청나라 황실 인사와 고위 관리들이 자케 드로의 작품을 수집했다. 유럽의 기계식 시계와 오토마타에 심취했던 건륭제 역시 그랬다. 런던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자케 드로의 회중시계 등이 자금성으로 공수됐다. 지금도 자금성 박물관은 자케 드로가 화려하게 만든 시계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로 시장을 넓히며 번창했던 자케 드로지만, 1790년 창업자 사망 후 급속하게 쇠락했다. 200년 가까이 자케 드로의 명맥은 아예 끊겼다.
브랜드를 되살린 건 스와치그룹의 회장이었던 고(故) 니콜라스 G 하이에크. 그는 2000년 이름뿐이던 브랜드를 인수했고, 스와치그룹 대표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로 키웠다. 현재 하이에크 회장의 손자인 마크 A 하이에크가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자케 드로는 공장을 증축하는 등 점차 생산량도 늘리고 있다. 미세한 입자를 1000도 넘는 온도에서 구워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랑 푀 에나멜링(grand feu ennameling), 8자 형태인 다이얼, 커다란 초침인 '그랑 스공(grande seconde)' 등 자케 드로만의 특성을 지닌 시그니처 시계들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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